"국가보안법이 죽느냐, 내가 죽느냐! "


남해에서    죄송합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2004/12/14
어제 (11월 13일) 오전 농성까지 하고 내려왔습니다.
11시 40분 농성을 마치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두번을 갈아타고 남부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터미널안은 온통 먹을 것으로 가득차 있더군요.
배가 더 고픈 것 같았습니다.
단식을 풀 것인가? 말 것인가? 순간 고민이 교차했습니다.
'지역에서 활동을 많이 할 것인데'
'아니 서울에서 굶고 있는 어르신들도 계신데'
어쨌던 유혹(?)을 뿌리치고 차에 올랐습니다.
그대로 곯아 떨어진 것이 덕유산휴게소까지 잠을 잤습니다.
휴게소에서 쉬다고 하기에 잠시 볼일을 보고 차에 탔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한 어르신이 부르더군요.
바로 옆 마을 어르신이었습니다.
귤을 3개 주던데... 참 먹기도 뭐하고 안먹기도 뭐하데요.
귤을 손에 쥐에 이리 저리 굴렸습니다.
그리고 한 입 먹고 말았습니다.
별 맛은 못느꼈지만, 잘근 잘근 씹어서 먹었습니다.
농민회 회의가 7시라 그분들을 차에 모시고 석교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참 오랫만에 남면 집에 들렀는데
김치에 밥을 먹고 가라는데,
"밥 먹었습니다."하고 그냥 돌아 왔습니다.
두곡에서 농민회 형님을 한분 모시고 농성장에 도착
회의를 하였습니다.
서울에 올라가기전에 농민회가 참 힘들었는데
회장님과 사무국장님이 잘 지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14일, 20일 집회를 힘있게 결의하였습니다.
설천에서 50대, 남면, 삼동에서 30대
다른 농민단체가 붙어주면 200대가 넘는 차량도 동원이 가능해 보였습니다.
회의가 마치고 통닭을 시켜먹었습니다.
물론 저는 못먹었지만,
"오늘 통닭이 왜이리 맛있노?" 사무국장이 들어라고 큰소리로 말합니다.
'내도 무지 먹고 싶은데'
12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했습니다.
4일만에 들어가는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아까 남면에서 가져온 김치가 생각나고,
밥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집사람이 죽을 쑤어 주었고
걸신 들린듯 죽을 먹고 말았습니다.
...
죽을 다먹고 난 뒤 컴퓨터를 켰습니다.
'지금 서울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미안한 마음에 이곳 저곳을 보는데
단식농성단 홈페이지(사이트에서 찾으면 됩니다.)에서 낮익은 사람의 이름이 보입니다.
서울에서 단식을 3일하고 진주에 내려와 활동하고 있는 선배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식을 7일째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다시 서울로 상경한다고 합니다.
문득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잠을 청하려 해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에 일어나 농민회 상경버스를 조정해 주고
집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내 밥 안먹을 것이다"
집사람은 먹고 하라고 하는데,
아침에 약국에 들러 '마그밀'도 샀습니다.
이제 다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끝장 단식농성에 함께 하려합니다.
내가 여기서 활동하는 것보다
추운 농성장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추운 거리에서 3시간이고 4시간이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지금의 저의 형편이 휠씬 더 쉬운 조건임을 잘 알기에
다시 한번 저를 추스리고 단식에 결합하려 합니다.
...
오늘부터 당의 일과 지역의 일을 합니다.
16일 있는 송년의 밤 행사와
18일에 있을 국가보안법폐지 일일동조단식단 및 서울상경단 조직
20일에 있을 농민집회를 잘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로 이 일을 하려고 하면 많은 당원 동지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저에게 연락주세요.
같이 12월 한달을 우리 민중의 승리로 안아올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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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민농성단은 여의도 국회 국민은행앞 노상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