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하고 있는 서울노동광장 홈페이지(www.seoulnodongja.net)에 올렸던
단식일기를 퍼다 올립니다.
* 단식 1일차
전날 3시경, 국보법 철폐를 위한 단식투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가 참여해야 하나보다'고 생각했다.
56년간 우리 민족을 적으로 규정한 채, 수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죽여왔던 국가보안법.
이제 그 법을 역사의 무덤 속으로 보낼 결정의 시기가 왔는데,
여기서 아무 것도 안한다면
나중에 우리의 아이들에게 뭐라 말하겠는가.
굶어야 한다면 굶겠다.
아스발트 바닥에 앉아 밤을 지새야 한다면 밤을 지새겠다.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면 국회로 들어가겠다.
자연스럽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국가보안법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 단식 2일차
- 이야기 1
울산에서 부부가 함께 올라왔다는 한 남성 동지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어미는 아 때문에 못 간다고 하거라"는 어머니 말씀에
"어머니, 이번에 국가보안법 폐지 못 시키면 어미나 저나 언제 또 감옥 갈지 몰라요.
저희들이 지금가서 며칠 데모하는게 낫겠어요?
아니면 또 감옥가는게 낫겠어요?"라고
대답했더니 어머니가 바로 옷가지를 챙겨주면서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으면서
국보법때문에 아들과 며느리가 감옥에 갔던 기억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아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 동지가 한 마디 더 보탰다.
"저한테 15개월된 딸이 있어요. 이젝 막 '빠빠, 맘마'를 하는 딸이 너무 이쁘거든요.
저는 우리딸을 정말 훌륭한 애국자로 키우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서른살 1월에 투옥돼서 서른 한살 1월에 나왔습니다.
이담에 딸이 커서 아빠는 서른살때 뭐하며 살았냐고 한다면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까요?
어떻게 우리 딸에게 아빠를 가둔 나라를 위해서 애국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 딸의 아빠와 엄마를 가뒀던 국가보안법을 반드시 폐지시키고
우리 딸을 진짜 훌륭한 애국자로 키우겠습니다."
- 이야기 2
낮 1시. 전경을 사이에 두고 '국보법 사수!'를 외치는 자유시민연대라는 보수단체 집회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해 올라온 평택 주민들,
국보법 끝장 국민단식단이 함께했다.
우리의 위용에 기가 죽었는지 보수단체는 줄곧
'빨갱이' '빨갱이'만 반복할 뿐이다.
자신들이 지켜야할 기득권은 많은데
그걸 지켜야할 이유는 전혀 없는 사람들.
그들 앞에 있으니 내가 굶고 있는 이유가,
우리가 국보법 폐지를 외치는 이유가
너무나도 명확해지고 들어간 것 없는 배때기에 힘이 들어간다.
분단으로 인해 자기 배를 채우던 사람들,
이제 그들의 배로 들어가던 것들이
온 민족에게로 돌아올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그날까지 열심히 굶고, 열심히 투쟁해야지. 아자!
- 이야기3
천정배의 말 한 마디로
열우당 당사 앞에서 5시간을 추위에 떨며 앉아 있어야 하는
현실에 너무나도 열받는다.
그래, 우리가 언제 너희 보수 정치인들 믿고 운동 했더냐.
너희가 못하면 우리가 한다.
똑똑히 봐라.
국민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 단식 3일차
계속 물만 마시다 보니 TV나 영화에서 봤던 도시락을 안 싸와서 점심시간에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우는 학생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목표를 갖고 우리의 의지로 밥을 굶지만 가난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굶어야하는 그 아이들은 얼마나 서러울까요.
한 해 국방비로 쓰는 돈을 조금만 줄여도 점심을 굶는 아이들은 없을텐데..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잘 키우기 위해서라도 얼른 국가보안법을 끝장내고 조국을 통일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하면 금새 되겠지요.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한바탕 걸판지게 놀고(?) 노숙투쟁을 하기 위해 침낭 속으로 몸을 누이는데 잿빛 하늘만 보입니다. 별이 하나라도 보이면 조금은 낭만적이었을텐데..
누군가 우리가 노숙자 신세 같다고 혼잣말을 하니 옆에 있는 사람이 그들은 외로워서 솜이불을 몇개나 갖고도 가슴이 서늘하고 춥겠지만, 우리는 함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냐며 힘을 내라고 합니다. 한 뜻으로 한 몸처럼 움직이는 우리들은 진정한 동지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맞은편 청과시장의 불빛이 밤새 빛나고 있었습니다. 낮,밤 가리지 않고 노동하는 사람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그 노동하는 사람들이 주인되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가슴에 되새깁니다.
- 덧붙여
얼마 전 TV에서 강제추방을 당하지 않으려고 골방에 숨어사는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일도 제대로 못해 난방비도 없이 사는 그들이 한밤 추위를 견디는 방법은 페트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 껴안고 자는 것이었습니다.
노숙투쟁 때 마시려고 물을 떠왔다가 그 장면이 떠올라 껴안고 잤더니 정말 온기가 오래도록 전해졌습니다. 노동광장식구들도 밖에서 자야 할 상황이 되면 꼭 활요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군요. 그런 지혜를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전수 받았다는 그 이주노동자들은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너무 외롭지 않았으면... 이뤄질 수 있는 바램인지는 모르지만 맘 속으로 열심히 기원해 봅니다.
* 단식 4일차어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 정부에 대한 공개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수요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민가협 어머니들의 목요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수요집회와 목요집회가 벌써 12년째라고 합니다. 그 십여년동안 이 나라는 민주화가 되고 국민 소득 1만불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하는데 왜 수요집회와 목요집회는 12년째 지속돼야 하는지..
4일을 굶어 이제 몸에 기운이 조금씩 빠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 아픔보다 우리조국의 현실이 더욱더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오늘입니다.
* 단식 5일차
이야기 하나.
아침 체조를 하고 다같이 모여 작은 축하의 자리를 가졌다.
오늘로 서른번째 생일을 맞은 울산에서 올라온 여성 동지의 생일날.
케잌도 미역국도 없는 생일잔치였지만, 같이 올라온 남편이 꽃다발까지 준비해 그 어떤 생일보다도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어린 딸 아이를 맡기고 올라왔는데 나이를 먹고 엄마가 되다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어제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어요.
입원을 해야 될 것 같은데 내려올 수 없냐고요.
제가 3년 동안 수배생활을 했었는데 그때 어머니가 수술을 받으셨어요.
그때 너무 가슴이 아팠었는데 이번에도 그럴까봐 사실은 공항까지 갔다가 되돌아왔습니다. 검진 결과 나오면 다시 결정 하려구요.
그것보다 이번이 아니면 국가보안법을 폐지시킬 수 없을 것 같은
절실함으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서른살 생일을 맞은 여성동지의 인사말이었다.
이야기 둘.
촛불집회에 우리 서울노동광장 깃발을 보니까 든든하다.
대표님이 단식을 하시니까 투쟁의 현장에 노동광장 깃발을 중심으로 모이는 우리들.
그 아름다운 모습에 가슴이 벅차다.
얼른 국보법 폐지하고 단식 끝낸 후,
우리 노동광장 회원들과 술 한잔하고 싶은게
요즘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다.
샌님이 단식한다고 혜미가 사다준 양말 신고 오늘 하루도
씩씩하게 투쟁해야지.
이상 국가보안법 끝장 단식단 단원
서울노동광장 사무국장 신정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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