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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    한경직 목사 예수이름으로 전두환을 축복 2006/04/16
한경직 목사 예수이름으로 전두환을 축복

신사참배 결의

▲ 1936년 1월29일 감 리교 총리사 양주삼 목사는
총독부 에서 신사 참배 순응의 뜻을, 6월에는
신사참배에 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 성결교 구세군 성 공회 등이 신사참배 결의

▲ 1938년 9월 장로교 제27차 총회(총회장:홍택기 목사)
에서 평양노회장 박응월 목사가 제안하고 평서노회장
박임현 목사의 동의, 안주노회장 길인 섭 목사의
재청으로 신사참배 가결.

총회 서기 곽진근 목 사는 다음과 같은 신사참배
결의 성명을 발 표했다.

『신사가 종교가 아니요 …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 에 신사참배를 솔선
여행(勵行)하고 추히 국민정신 동원에 참가하여
비상 시국하에서 총후(銃後) 황국신민으로서
적성(赤 誠 )을 다하기로 함』

2) 기독교지도자들의 친일행각

▲ 유형기 윤치호 박 희도 차재명 목사등이 1937년
각도 순회시국강 연에 나서서, 황국신민으로
부일협력 할 것을 주장.

▲ 박희도 목사는 3.1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중
한명으로, 친일잡 지 <동양지광(東洋之光)>을 발간했다.
부일협력을 촉구하는 논설 등을 실었다.

▲ 신흥우 목사는 당 시 YMCA 총무로 재직중이었다.
신목 사는 「천황 폐하의 충성스런 적자로 오직
일본을 사랑하라. 이것이 조선기독교도에게 주어진
신의 명령」 이라고 주장했다.

▲김활란(이화여대 초대총장) 모윤숙(시인)
유각경(YMCA 초대 회장) 장정심(기독교여자절제 회 총무)
고황경 서은숙(배화여고 교장) 등 여성지도자 들은
신사참배 내선 일체를 강조하는 강연회 강사로 나섰고
정신대 참여를 호소하기까지 했다.

3) 성결교회 교단 해체 선언

▲ 1943년 12월29일 성결교회는 『중생 신유 성결 재림의
4중 복음교 리가 국민사상을 혼미에 빠뜨리며,
이와같은 불온 포교를 해온 책임을 통감한다.
이를 맹서하여 결정하 황국신민의 자격을 실추치
않을 것을 기한다』 며 교단의 해체를 선언했다.

4) 장로교와 고려파의 분열

▲ 1945년 해방후, 신사참배를 순응했던 그룹과 이를
거부하고 순 교 투옥 등 고난의 길을 걸었던
그룹과의 분열.
굴종자들은 「교회를 지켜내지 않았느냐」
는 논리로 해명과 회개를 거부했다.

5) 기독교의 인민군 환 영대회

▲ 1950년 인민군이 입성하자, 「기독교민주동맹」이
결성 됐다. 위원장에 선출된 김창준 목사는 인민군
환영대회를 준비하기로 했다.
고문에 신홍우 목사, 총무에 박성산 목사를 위촉하고
각 교단대표자로 장로교에 최문식 유호 준 김종대
목사, 감리교에 최택 박만춘 심 명 섭 목사,
구세군에 황종율 사관 등이 준비 에 나섰다.
7월10일 YMCA에서 3백여명이 참 석한 가운데 김종대
목사 가 설교, 임영빈 목사 가 환영문을 낭독했다.

6) 장로교의 분열

▲ 1952년 장로교에서 기장이 분열되었다.

7) 감리교 성결교 침례 교 등 분열 줄이어

▲1954년 감리교에 이 어 성결교 침례교 등의
분열이 줄을 이었다.

8) 장로교의 합동 통합 분열

▲1959년 장로교가 다 시 합동과 통합으로 분열됐다.

9) 3선 개헌 지지 운동

▲ 김윤찬 조용기 김준곤 김장환 목사 등 교역자
242명은 1969년 9 월4일 「대한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하고 3선 개헌을 「대통령의 용단」이라 며
지지하고 나섰다.


10) 유신헌법 지지 성 명

▲ 1972년 「대한기독 교연합회」 등에서 유신헌법을
지지 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독교계는 정부가 내건 「구국의 유신이다 새 역사
창조하자」 등의 표어를 적극 홍보했다.

11) 예장총회와 예장 개혁 합신 등 분열

▲ 1979년 예장총회의 주류와 비주류 분열이 있었다.
비주류는 다시 예장 개혁 합신등으로 분열됐다.

12) 전두환 상임위원 장을 위한 조찬기도회

▲ 1980년 8월6일 롯데호텔에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가 열렸다.
사회에 문만필 목사, 설교에 한경직 목사,
기도에 정진경 조향록 김지길 목사와
김인득 장로가 맡았다.
정진경 목사는 전 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해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 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기도했다.
이 기도회 는 KBS와 MBC를 통해 현장중계와 다음날
두번 에 걸쳐 녹화 중계 됐으며, 신군부 집권의
서막을 열어준 집회로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 김 준곤 신현균 김신명 김창인 지원상 이봉성
유흥묵 장성칠 박정근 김용도 김종식 목사 와
최태섭 장로 등이 참석했다

▲교회주관 서울시청앞 대규모 집회
-미군철수반대,숭미집회-
2001.8.15
2002.8.15
200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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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60년동안 저지른 만행


1946년 8월 15일
해방 1주년 기념식에 참가하러 광주에 간 화순탄광노동자들을
미군헌병이 무력 으로 강제해산하여 김판석씨가 사망하였고,
7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108명이 부상당했다.

1953년 5월 28일
미군 제45사단 소속 제임스.H.브런치가 거제도 장승포읍에서
가정집에 침입, 총기를 난사하여 박우선씨외 2명이 사망하고
오경숙씨 등이 중상을 입었다.

1955년 8월 11일
제24사단 32부대 소속 미군이 국군 헌병 김정준씨를 휘발유
절취범으로 오인하여 총을 발사 사망케 했다.

1956년 7월 8일
송세훈(16)씨는 김포공항 주둔부대 디봉 에스 단스에게 꿔준
돈을 갚을 것을 요구하다 그가 발사한 총에 맞아 즉사하였다.

1957년 7월 6일
미군 도날드.E.파세트는 송유관에서 논다는 이유로 세 살
아기에게 총을 발사 하여 즉사시켰다.

1958년 2월 25일
토마스.G.제임스와 마빈.E.캠프는 김춘일(14)씨를 절도
혐의자라며 구타하고, 칼로 무릎과 팔을 찌르고,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얼굴에 콜타르 칠을 한뒤 나무상자
집어넣고 못질을 하여 사망케 했다.

1958년 9월 26일
미제7사단 17연대 수색대 소속 미군은 인재남(36)씨
등이 빵을 훔치려 했다고 총기를 발사하여 사망케 했다.

1962년 1월 6일
미군 수십명은 출입금지구역에서 나무를 한다는 이유로
황광길(25)씨와 유기용 (38)씨에게 총을 발사 사망케 했다.

1964년 2월 4일
7사단 31연대 카메룬 로버트는 깡통을 줍던 임신 9개월의
서명자씨에게 발포 사망케 했다.

1966년 12월 1일
미군 콜버트 대위는 결혼 6년이 지나도록 애가 생기지 않자
막노동을 하는 이수길(29)씨의 딸을 고아로 조작하여 미국으로
입양시켜 강제로 그의 딸을 빼앗아 버렸다.

1967년 10월 21일
미1군단 유니스 2세는 매매춘 후 화대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목을 조르고 커튼에 불을 지른 후 도주하여 집을 소실시켰다.

1968년 9월 15일
열차 안의 미군용백에서 손남숙씨로 추정되는 여자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1970년 10월 10일
미36공병대 매추스는 의정부에서 야간근무하던 직공
강문순(17)씨를 강간하려하다, 반항하자 목졸라 죽였다.

1971년 2월 14일
부평 미보급창의 브라운은 자신이 만나고자 했던 기지촌
매춘여성이 없다는 이유로 김순화씨 집에 불을 질러 근처
집 5채를 소실시켰다.

1973년 11월 19일
미군 페르트 제임스는 만취상태에서 버스를 훔쳐 달리던
중 권영순(57)씨 등을 치고 뺑소니하여 사망케 했다.

1977년 6월 12일
미공군 제1중대 소속 스티브.알랜.타워맨은 기지촌 여성
이복희(25)씨를 목졸라 죽인 후 방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사체를 유기하였다.

1980년 11월
미육군 K-6기지 셔링 데이빗은 술에 취해 발기하지 못하는
것을 비웃었다고 윤미영(20)씨를 브래지어로 목졸라 죽였다.

1990년 6월 28일
동두천의 여관에 1주일 동안 미군과 투숙하던 박모양(25)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1991년 1월 8일
미8군 수송부대 소속 찰스 유진 버쳐는 최모양(9)등 10세
미만의 어린이 3명을 성폭행했다.

1992년 10월 28일
미제2사단 25보병연대 케네스 리 마클은 윤금이(26)씨의
머리를 콜라병으로 난타하고 자궁과 항문에 맥주병과 우산을
꽂아 살해했다.

1993년 3월
경기도 평택의 K-55 미공군기지에서 하루 1천6백여톤의
오폐수를 정화하지도 않은 채 방출하였다.

1994년 3월
미군이 사용하다 1992년에 철수한 캠프 이즈벨(6천평), 캠프
리비(16만평), 캠프 에임즈(1백 19만평)의 토양을 조사한
국립환경연구원은 이 지역의 토양이 일반지역에 비해 납은
최고 24배, 카드뮴은 최고 7배 오염되어 있는 것으로 밝혔다.

1994년 10월 25일
미군 헌병 다니엘 그림 중사 등 4명은 미군과 국제결혼한 딸을
방문한 김금순씨(68)를 미군물품 판매상이라며 그녀의 두 딸과 함께
감금한 후 폭행하였다.

1996년 6월 10일
미7공군 소속 윌리엄스는 평택 에바다 농아원생 김모군(12),
최모군(12), 이모군(16)을 부대내 자신의 숙소로 불러 성폭행하였다.

1996년 9월 7일
미군 제2사단 뮤리크 에릭 스티븐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과의 성행위를 거절한 이기순(44)씨를 안면을 때려 실신
시킨 후 면도칼로 목을 잘라 살해하였다.

1997년 4월 3일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와 미군속의 아들 아더 페터슨은 이태원의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단지 부딪혔다는 이유로 조중필(22)씨를
잭 나이프로 마구 찔러 과 다출혈로 숨지게 하였다.

1998년 1월 6일
제473 야전시설 지원중대 소속 핸릭스 티모시 제롬은 함께 자던
허주연(22)씨가 부대로 복귀하려는 자신을 붙잡았다고 명치를
때려 숨지게 한 후 침대에 불을 붙여 방화했다.

1998년 1월 20일
미공군 제9전투 비행단 소속 데일 허프는 군산 기지안 숙소에서
컴퓨터, 스캐너, 컬러 프린터를 이용 만원권 원화와 미화 20달러
지폐를 대량 위조했다.

1998년 2월 8일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 쿠니 사격장 폭음 및 진동 피해 때문에
지난 50년간 일상 생활을 할 수 없었던 매향리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매향1리에는 자살한 사람만도
23명이나 되며 방사능 오염의 가능성이 있는 열화 우라늄탄
사용 의혹도 제기되었다.

1998년 3월 7일
경기도 의왕시 백운산 정상 부근에 소재한 미8군 메디슨
통신 부대 지하 송유관이 터지는 사고로 백운산과 왕림천
일대 계곡 청정지역의 토양층이 20m~80m의 두께로 기름이
배이는 회복불능의 오염피해를 입었다.

1998년 5월 30일
마을 주민들이 인근 훈련장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연천군
전곡읍 미산면 동이리의 유일한 마을 입구를 차량으로
막아버린 미군들은 항의하던 주민 윤광진(26)씨, 양경섭(39)씨
등을 폭행하였다.

1999년 09월 07일
동두천시 보산동에서 미군과 동거중이던 이정숙(47세)씨가
자신의 방안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시신이 심하게
부패되어 있어 외상의 흔적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 사체는
엎어져 있었고, 주변에는 많은 양의 부패액과 피가 섞여 있었다.
함께 동거중이던 미군이 강력한 용의자였으나 미군측이
미국으로 빼돌림. 부검 결과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처럼 많은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타살 의혹을 배제하고
자연사라고 단정하고 수사. 게다가 경찰은 "이 사건은 원래부터
수사할 가치도 없는 사건이었는데 새움터나 주한 미군 범죄
근절운동 본부 등에서 하도 난리를 치니까 할 수 없이 수사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망언을 서슴치 않음. 동두천 주민들은 이제
사건이 나면 아예 미제로 몰고가려 든다는 말로써 경찰에 대한
깊은 불신을 나타냄.

2000년 2월 9일
미8군 용산기지에서 시체부패방부제로 쓰이는 포름알데히드와
메탄올 혼합액475ml 480병을 하수구를 통해 한강에 무단 방류했다는
사실이 녹색연합을 통해드러났다.

2002년 6월 6일
2001년 7월 공사장에서 작업하던 중 미군측의 22000 볼트 고압선에
감전되어 팔다리 사지를 잃은 전동록씨가 1년여간의 투병생활을
끝으로 사망하였다. 공사를 해야하니 고압선을 이전해달라고 미군에
수차례 요구했으나 이 요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재앙을 불렀다.

2002년 6월 13일
미2사단 공병대 소속 부교 운반용 궤도차량은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던 신효순 (14)양과 심미선(14)양을 치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피해자 발견여부, 경고여부 등 그 사고원인에 대해 그 무엇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군측은 누구의 과실도 아니라며 잘못을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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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미국의 대표만행들


1. 대량 학살

히로시마에서 15만 명 나가사키에서 7만 명 그 후 휴유증으로 죽은
사람이 13만 명 방사능으로 죽은자가 수십만명(1984년에 전문가들에
의해 작성된 보고서)........

일본의 도조내각은 여러 통로로 항복의사를 타진중 이었으며
미정보부와 군내에서도 항복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던 것이 최근
밝혀짐.....

미공군과 정보부는 핵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음을 워싱톤에 보고...

그러나 미정부와 정치가들은 핵무기 투하를 결정...당시 관료들의
증언과 전문가들이 밝힌 이유는 <소련을 겁주려는 것과 전세계에 힘을 과시하려고 또하나는 신무기의 실험>

핵무기 투하후 트루먼을 아주 태연히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뛰우며(이것이 바로 악마의 미소가 아닐까 수십만명을 불지옥 속에서
태워 죽이도록 명령한 악마)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히로시마의 군기지와 군수물자 창고 위에 정확히 폭탄을 투여했다>

2. 양민학살 지원

1) 제주도 양민학살

미국은 점령지나 그들이 지원하는 독제정권이 안정될 때까지
고문단을 파견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해방 후 제주도에서 8만 명의 양민이 학살되었다(이승만 정권의
공식집계이니 대략 10만 명은 죽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
제주도 인구는 30만 명)갓난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
심지어 여러 마을에서는 숨쉬는 모든 존재가 죽임을 당하였다.
죽이는 방법도 너무나 잔인하여 피가 끓어 차마 글로 형용키
어렵다. 여기에도 미국의 고문단이 배후에 있었다.

얼마 전 여기에 고문단으로 참여했던 몇 명의 미국인들이 양심
선언을 하였다. 학살당한 사람들 중 극소수만이 공산주의자들 이였고
대부분은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었다고........

2)국민 보도연맹 사건

미군정이 권력을 부여해준 이승만과 친일관료들이 자행한
양민학살의 원흉은 미국이 아닐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반민족세력에게 권력을 주어 천인공노할 살인 만행을 방조한
것이다. 국민보도연맹(전향한 남로당원과 그 가족들로) 20만 명을
단 이틀만에 학살하였으니......그것도 자수하여 전향하면 과거의
죄를 묻지 않겠다고 약속해놓고 죽였으니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만하다.

3)신천 양민학살

황해도 신천군에서 군민 3만5천 여명이 학살되었다.
한국전 당시 미군의 점령지인 이곳에서 가공할 살인이 자행되었다.
대부분이 부녀자와 어린이 노인이었는데 이들은 단지 그들의
자식과 남편이 공산주의자나 인민군에 복무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했다.

엄마들이 보는 앞에서 아이들을 불태워 죽이는가 하면 사람들을
집이나 대형 창고에 가둔 다음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였다.
물론 미국이 직접개입 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지만 기독교계와
반공청년단등 우익단체들이 자행한 이 테러는 그들이 점령하자마자
일어났다.

이 학살은 당시 전세계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피카소는 이 학살소식을 듣고 인간의 악마성과 전쟁의 잔혹함을
<코리아의 학살>이라는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일본에서학살에 장면을 그린 드로잉 전을 열어 이 천인공노할 만행을 전 세계에
고발하였다.


이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

4) 이상한 교육

한국전쟁에 파견된 군인들은 비밀스러운 교육을 받았다고
증언하였다. 깜둥이나 유색인종은 열등한 종족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교도이며 야만족이다. 따라서 그들을 죽이는데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 전쟁에 참여한 한 미군이 나중에 이러한 글을 발표하였다.
북으로 진군하면서 우리는 포로로 잡힌 어린아이나 여자들을
아주 장난스럽고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 우리는 그것을 즐겼는데
당시에는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동물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 세균전

미군은 한국전에서 세균을 살포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평안도에서는 여러 가지 세균을 살포 하였다. 또 지리산에서
투쟁중이던 빨치산들을 향해서도 세균을 살포하였다.

이것은 명백히 미국이 자행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당시 이러한 세균을 배양하고 있던 국가는 미국뿐이었다.

니카라과, 엘살바도로, 쿠바에서 저항하는 민간인들을 향해
세균을 살포 수십만명이 감염되었다.

6) 남미 민주주의 탄압과 양민학살

엘살바도르의 군사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미고문단은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시민들과 생존권을 요구했던 농민에게
가공할 폭력과 학살을 지원하였다.

3만명이 무참히 죽였으며 1만명 이상이 구금된 상태에 행방
불명되었다(그들은 대부분 끔찍한 고문을 당한 후 살해되어
바다나 강에 버려져 시체마저 찾을 수 없다)

칠레의 온건 사회주의 정권 아옌덴 정권을 전복 시키고
피노체트의 살인정권 지원, 쿠바의 살인정권 바티스타 정권 지원,
니콰라과, 앨살바도르, 콜롬비아, 과테말라의 민주정권을
타도하고 군사정권의 등장 지원 이 과정에서 직접 폭격을 하기도
하고 군대를 투입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세균전을 감행 무고한
민중들을 죽임........


7) 베트남전에서의 양민학살

베트남 전쟁으로 100만명 가량의 사람들이 죽었다.
미국은 북베트남으로부터 구축함이 공격받았다며 전쟁을
선포했는데... 이후 공개된 국방부 기밀문서에서 첫 번째는
아예 공격받지도 않았으며 두 번째는 미 구축함과 CIA가 먼저
기습 공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전쟁 중 미군은 무수히 많은 양민을 학살하였다.
미라이 마을 학살에 내린 명령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이 학살에 참여한 한 병사는 이렇게 말했다. 마을에 베트콩은
단 한명도 없었다. 어린아이와 여자 노인들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를 죽였다. 명령이었으니까......

8) 캄보디아 폭격

캄보디아에서는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에 의해 200만명이
무참히 학살되었다.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서 지지를 받던 온건한 사회주의 정권
(시누아크공)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미국은 친미정권의
수립을 위해 아무런 저항을 할 힘도 그 흔한 대공포 하나 없는
아주 조그만 나라의 평화로운 농촌에 무차별 폭격을 하였다
(폭격을 명령한 사람은 하바드대 교수이자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져이다)

이 폭격으로 미국이 지원한 악날한 군사정권(롤 론)이
정권을 장악하여 민중을 탄압하는 공포정치가 실시되었다.
이는 크메르루즈내에 급진적 좌파 모험주의를 등장 시켜
대학살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3. 군사정권 지원

쿠바의 바티스타 정권, 니카라과의 소모사 정권, 과테말라의
아르마 정권,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 아이티의 뒤발리에
캄보디아의 롤론 아르핸티나 파키스탄 그리스 필리핀
엘살바도르 미얀마 한국 인도네시아 등등등........

양심적이고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어김없이 군인들로
하여금 쿠테타를 유도하여 정권을 전복하고 이에 저항하는
민중들을 고문하고 학살케했다.

단지 친미적인 정권을 등장시키기 위해 정권을 잡아서는
안될 삼류 깡패만도 못한 자들에게 권력을 쥐어 준 것이다.
그들이 자행한 만행을 보라...한국에서 남미에서 아시아에서
야만적 폭력과 학살로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고통속에서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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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 놈도 아침 조찬기도회에서
고 전두환 축복 기도를 해 준 놈이다. 하늘에서 낳 자식이라고
참으로 더러운 놈들이 모두 목사 놈들이다. -[10/26-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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