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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강수돌]현수막속의 한국사회 - 국가보안법 철폐를 넘어 2004/09/10
2004. 9. 9(국보법폐지 국민연대: 이 글은 노기연이 발행하는 <민주노동과 연대>에 실린 것을 필자가 보완한 것임.)

현수막 속의 한국 사회 - 국가보안법 철폐를 넘어

강 수 돌(고려대 교수)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국회의원은 사퇴하라.” 고엽제휴유증에 시달리는 어떤 참전용사들의 모임에서 내건 현수막이다.
   길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한 이 현수막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수준을 여러 각도에서 말해주고 있다. 우선, 세상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군부 독재 시절 같으면 “OO한 국회의원 사퇴하라”는 현수막을 단 개인이나 단체는 당장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반국가 세력 또는 좌경용공 세력이라고 매도당하면서 초죽음이 되었을 게다. 물론 이런 변화는 그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 결과 하나씩 쟁취된 것이다. 하기야 수백 년을 갈 것 같던 정통 수구 세력들이 여당 자리를 빼앗기고 마침내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입성한 것은 한국 사회의 집단의식이 어느 정도 변했음을, 그리고 그간의 사회적 세력관계가 많이 변했음을 말해주지 않던가.
  다만 일부 새로운 개혁 세력이 또다시 돈과 권력의 달콤한 맛에 물들어 ‘약시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의 냉소주의를 자아내는 측면도 있지만 말이다. 집권 뒤 시장 체제 앞에 거의 무릎을 꿇고 만 만델라(남아공화국)의 경우나 역시 집권 뒤 ‘국익’의 명분 아래 IMF나 세계은행 등과 이런저런 식으로 타협함으로써 예전의 선명성이 거의 바래버린 룰라(브라질)의 경우를 보면 이런 변신들을 단순히 특정 개인의 의지 문제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것은 오히려 과연 새로운 변화에 대한 밑그림과 개념들이 얼마나 근본적인가, 그리고 동시에 그런 근본적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경로에 대한 추진 전략과 주체 형성이 얼마나 되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우리가 보다 철저하게 논의해야 함을 시사한다고 본다.
  다음으로 이 현수막을 내건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반대하는 국회의원”만 사퇴하면 문제의 원인이 없어지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현 상태가 지극히 정상임을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라, 국가보안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만든 치안유지법을 모방한 것으로, 해방 공간에서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의 이식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만든 것이다. 과연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를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만드는 체제인가? 게다가 그 당시에 기득권 세력들이 자기들만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런 악법을 만들었다손 치더라도 오늘을 사는 우리가 과연 그 법을 정당하다면서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가? 특히 21세기 들어 남북 정상이 만나고 대결과 적대보다는 화해와 협력을 강조하는 이 시대에, 더 이상 시대 정신과 조화되지도 않는 그런 법을 고수해야 하는가? 그리고 실제로는 국가보안법의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양심 세력이 고통을 당했으며 억울하게도 목숨까지 잃고 했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봉건주의 말기에 귀족세력들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기운 앞에서 낡은 체제를 수호하려고 마지막 발악을 하던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런 현수막을 내건 사람들이 (봉건 시대 말기의 귀족들처럼)기존 체제의 기득권자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도 지금의 이라크 침략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명분도 없는 베트남 전쟁에 오로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사실은 ‘먹고살기 위해’ 참전했던 고엽제의 피해자들이 아닌가? 널리 알려졌듯이 고엽제란 농약인 제초제의 일종으로 그것을 뿌리면 온갖 나무와 풀, 그 속에 사는 온갖 생물들이 말라죽는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은 저항하는 베트콩을 잡기 위해 고엽제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하였다. 그 과정에서 베트콩은 물론 무고한 베트남 시민들, 그리고 자의반타의반으로 파병되었던 한국군들이 고엽제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런 면에서 고엽제 피해자들이 겨냥해야 할 지점은 미국이나 고엽제 제조 회사, 그리고 파병을 강행했던 남한 국가 당국(당시의 의사결정자들)에 있다. 그런데도 화살이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 다시 말해 시대적 양심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로 겨냥되는 것은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잘못된 줄도 모르고 현수막을 크게 내걸어 온 세상에 알리려는 행위 자체가 참으로 한심하다. 피해자들이 그 피해의 원인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엉뚱한 자들에게 공격자로 행위 하는 현상, 이것은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 중의 하나일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 ‘서대문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욕한다.’는 옛말이 참으로 들어맞는다고 느낀다.
  현수막은 아니지만 오래된 국도를 달리다 보면 “남북이 화해하여 평화통일 앞당기자.”와 같은 새로운 간판도 나타난다. 물론 가끔 가다 보면 아직도 “수상한 자 신고하여 적화야욕 분쇄하자.”는 식의 노골적인 반북한 구호가 철거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철거를 담당한 사람들이 철거비를 빼먹었거나 아니면 자기 소신에 맞지 않아 철거 지시 자체를 철거했을 것이다. 반면 “남북이 화해하여 평화통일 앞당기자”는 구호는 얼마나 선한가? 이것이야말로 ‘분단시대’를 청산할 가장 합리적인 길이 아닌가?
  2004년 9월 5일,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 수반으로서는 처음으로 “국가보안법은 구시대의 유물이므로 당장 폐기하여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는 의견을 공개 제출하였다. 대단히 고무적이다. 국보법에 의거하여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김대중 대통령조차 어인 일인지 국보법의 폐기를 주장하진 않았다.
  그런데 국보법 폐지, 남북화해, 그리고 평화통일이라는 시나리오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것인데, 남북 화해 이후 평화 통일되는 새로운 한반도가 과연 어떤 생산관계를 주축으로 재구성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지금까지 남한 사회의 통일 논의는 우선 평화 무드를 구축하고 다음으로는 남한 자본주의 체제를 중심으로 북한 노동력과 천연 자원을 활용하여 새로운 ‘강대국’을 건설하여 동북아 중심 국가로 떠오르게 만들자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강대국’이나 ‘동북아 중심 국가’라는 아이디어도 문제지만, 남한 자본주의 체제를 중심으로 북한 체제를 합병하여 노동력과 천연 자원만 십분 활용하겠다는 발상은 독일식의 ‘내부 식민지’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흔히 ‘동북아 중심 국가’라는 말을 들으면 괜스레 우리나라가 중앙이 되어 모든 것의 핵심이 되는 듯한 생각을 하게 되지만, 사실 이것은 주변 국가들을 대상화하고 내가 핵심이 되겠다는 일본 제국주의 식의 ‘대동아공영권’ 발상의 아류 작품이다. 게다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도 남북한 체제 모두를 한 단계 뛰어 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고민이 없이 막연하게 ‘평화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남한 자본주의를 북한에까지 ‘평화적으로’ 이식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물론 남한 자본주의가 남북한 모두를 아울러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보편성을 갖는 것이라면 그건 좋은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체험하듯이, 그리고 수십 년간 과거사로부터 목격해왔듯이 남한 자본주의는 갈수록 자율성과 인간성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과정이기보다는 반대로 그것의 축소와 파괴를 강화한다. 나아가 우리 삶의 토대인 흙과 물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파괴되는 것을 밥상에서부터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삶이 건강하지 못하고 갈수록 황금만능주의가 득세하며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는 이 체제가 과연 누구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하는가? 게다가 그런 정당성을 상실한 체제가 과연 누구의 허락을 받아 북한 내지 다른 나라로 이식 또는 확장하려 하는가?
  일례로 2004년 7월 말, 무려 460명이 넘는 ‘탈북자’들을 집단으로 데려온 것은 뭔가 구리다. 심지어는 ‘기획탈북’이나 ‘유인납치’ 의혹까지 나온다. <통일뉴스> 대표인 이계환씨에 따르면, 식량난으로 고통 받는 북한 사람들이 먹고살 길을 찾는 과정인데도 마치 북한 체제 전체가 붕괴되는 것처럼 정치문제화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활약하는 미국의 민간단체가 있는데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NED)’으로 이 단체는 단지 민간 기구의 틀을 빌려 첩보기관인 CIA가 하던 일을 한다. 남한에서 활동 중인 북한 민주화네트워크나 북한인권시민연합도 이 단체의 자금 지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의 지향점은 결국 북한의 붕괴 또는 체제 전환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즉 자본주의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 화해”조차도 그 기본 의도가 사회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며, “평화통일”조차도 결코 평화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다른 체제로부터 배울 것은 배우되, 그 모든 것을 한 단계 넘어서는 “변증법적 통일” 논의가 없이는, 오직 남한 자본주의가 주는 고통을 외적으로 확장만 해버릴 소산이 큰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 우리가 제 아무리 “변증법적 통일”을 이야기하더라도 우리의 의식이 ‘분단 시대’를 극복해야 된다는 데 과잉 집착하는 한 우리의 시야가 ‘통일’에 쏠릴 수밖에 없다. 단언하건대 우리가 ‘분단의 극복이 통일’이라는 구도(민족주의, 국가주의)에 갇힌 한, 참으로 새로운 세계, 즉 외적으로는 세계의 다른 사회들과 수평으로 연대하고  내적으로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참되게 더불어 하나가 되는(통일) 세상을 열 수 없다고 본다(여기서 외적/내적 하는 구분은 논의의 편의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내/외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이런 관점에서는 역설적이게도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야말로 진정한 통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하는 사람들, 노동조합들,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도 눈앞의 이슈에만 매달리지 말고 이런 문제에 대해 심각히 토론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 체제 이후, 우리의 후손이 진정 인간답게 살아나갈 수 있는 새로운 미래 사회의 건설을 위하여 말이다. 다시 말해,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넘어 국보법이 없어진 이후에도 돈벌이를 추구하는 기득권 세력이 천박한 자본주의를 더욱 확장하려할 것이기에 이를 막아내고 정말 모든 풀뿌리가 인간답게 사는 새 세상을 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이런 논의를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향후 진보 세력이 견지해야 할 입장과 과제를 몇 가지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1. 진정 새로운 통일 사회란 남한 자본주의도 북한 스탈린주의도 아닌, 소규모의 자율적이고도 생태적인 공동체가 형성하는 ‘풀뿌리 자치주의’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진정 바람직한 ‘통일 한국’이란 하나의 체제로 획일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숙하고 건강한 주체들이 다양성과 창의성을 갖고 자립성, 순환성, 검소함을 본질로 하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전국 방방곡곡에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자본의 독재나 관료의 독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또 시장의 지배나 기득권 체제가 강제하는 파괴성으로부터 인간과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지켜낼 수 있다.
  2. 그런 방향성을 갖고 이행하려면 현 단계에서 하루빨리 ‘국가보안법’ 같은 시대착오적인 법들은 없애버리고 대신에 ‘자율공동체 촉진법’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 내용은 크게 보아 풀뿌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그 모든 제도와 관행은 척결하는 대신 자율성을 고양시키는 생산관계와 생활양식을 촉진하는 내용이어야 하며, 동시에 생태성과 지속가능성을 침해하는 모든 제도와 관행, 조직체와 개인들에게 제동을 거는 대신 생태적 건강성을 고양시키는 생산관계와 생산력, 생활양식 등을 촉진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3. 풀뿌리 자치주의의 새 생산관계, 새 생활양식에서는 각 공동체마다 1) 기본적으로 건강한 먹거리(곡식, 채소, 과일 따위)를 생산하는 유기농업이 경제 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2)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기 적성과 능력에 걸맞는 일, 그러면서도 생태적 자율공동체의 확대재생산에 이바지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3)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기본급은 같거나 비슷해야 한다(다만 맡은 일의 특성에 따라 보조금이 다를 수 있다). 4) 모든 사회구성원은 일의 성과나 분량과 무관하게 기본 생존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5) 노동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어 하루 한 나절만 일하도록 한다. 6) 땅과 집, 노동력은 어떤 형태로든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7) 의료와 육아, 교육 문제도 자율공동체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4. 이러한 노력이 국내외적으로 기득권 세력이나 반동 세력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탄탄한 뿌리를 내리려면 남북한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북미, 유럽 등 세계의 모든 풀뿌리 운동과 연대해서 자율공동체 운동을 동시다발적으로 줄기차게 진행시켜야 한다. 이미 생성되고 있는 세계사회포럼이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 운동, 그리고 다양한 부류의 대안운동 세력들과 생동하는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전선에는 연대의 손길을 보태고 아무 토대도 없는 곳에는 새로운 싹을 여기저기 틔워나가야 한다. 예컨대 현재 존재하는 수천 개의 노동조합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당장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유기농 공동체나 생협들과 조직적으로 결합하여 ‘먹거리 연대’를 이룸으로써 새로운 차원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당장 눈앞에 큰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한, 굽힘없이 그러나 희망을 갖고, 힘차게 밀고 나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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