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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    [오마이주장]한번도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었던 자들의 외침 2005/10/26
한 번도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었던 자들의 외침
[주장] '보수원로'들의 제2 시국선언을 보며
이태경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들, 궐기하다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인 조국의 처지를 보다 못해 자칭, 타칭의 보수원로들이 노구를 이끌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18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나라가 망하기 전에 대한민국을 살리자'라는 제목의 '제2 시국선언'을 발표했다고 한다.

제2 시국선언에 서명한 인사들의 면면도 화려하기 그지없어 김수한ㆍ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일규 전 대법원장, 강영훈ㆍ이회창 전 국무총리 등 전직 3부 요인과 전직 장관 76명, 전 국회의원 205명, 전직 대사 48명 등 각계 인사 1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역대정권에서 힘깨나 썼다는 인사들 중 제2 시국선언에 서명을 권유받지 못한 인사들이 퍽이나 민망했을 성 싶다.

이들에 따르면 "오늘 대한민국은 좌경화(左傾化)가 나라의 안방과 심장을 위협하고 있는 위험한 나라"이다. 뿐만 아니라 "전향여부가 불투명한 386과 노무현 정부의 장막 뒤에 몸통을 숨기고 있는 정체불명의 배후세력 등 친북ㆍ좌경ㆍ반미 인맥(人脈)들이 청와대 등 국가기관과 KBSㆍMBCㆍSBS 등 공중파(公衆波) TV들을 장악하고" 있어 나라가 결딴(?)날 것만 같다.

물론 강 교수 사건에 대해서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천 장관도 이들의 날선 비판에서 무사할 수는 없어서, 천 장관은 졸지에 "건국사상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여 국기(國基)를 흔든" 좌파 정권의 법무장관이 되었다.

이들의 평가에 따르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대한민국을 비정상적인 나라"로 만들어 버린 "좌파정권"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좌파정권씩이나 된다니 참으로 후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우국충정(?)으로 똘똘 뭉친 노병들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많기도 하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4대 입법과 연정추진을 단념하고, 시장경제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강남'과 '삼성' 때리기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부정한 부의 형성은 처벌하되 정당한 부의 축적은 존중하는 사회, 그리고 분배가 성장 잠재력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이 분배의 여력을 창출하는 국가경제를 재건해야 한다"고 근엄하게 타이르고 있다.

대북관계에 관한 훈수도 빠질 수 없어서 이들은 대통령에게 6.15 공동선언을 폐기하고 대북 경제원조는 북한의 개혁, 개방 및 인권상황의 개선과 연계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야성(野性)을 잃어버린 한나라당에 대한 보수원로들의 실망은 이런 식으로 할 거면 한나라당을 대안으로 선택할 수 없다는 자못 협박조에 가까운 경고로 끝을 맺는다.

기실 이들이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退陣(퇴진) 요구는 不可(불가), 그러나 스스로 물러나는 대통령 막을 수 없다"라는 소제목에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노 대통령이 끝내 국민 여론을 외면하고 헌법을 무시ㆍ유린하며 나라를 오도하는 길을 고집한다면 국민에게 남겨지는 유일선택은 당연히 '국민저항권(國民抵抗權)'의 발동일 뿐"이라는 듣기에 따라서는 쿠데타나 국가변란을 선동하는 듯한 언사도 친절하게 부연되어 있다.

선언문 말미에, 다음 대선에서는 "함량미달의 사이비 지도자"를 선출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는 이들의 피 맺힌 절규(?)는, 그러나 불행히도 전혀 비장하거나 설득력이 없어 선언문을 읽는 이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른바 보수원로들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대한민국이 금방이라도 적화되거나 경제적 파국에 이를 것만 같은 격렬한 위기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다행인 것은 이들의 주장이 사실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상상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청와대 등을 위시한 국가기관과 방송국 등을 전향-이 무슨 살벌한 표현이란 말인가?-하지 않은 386세대와 정체불명의 세력 등의 친북, 좌경, 반미 세력이 장악하고 대한민국을 좌경화하고 있다고 멋대로 상상한다.

이분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을 주름 잡던 시대에 하던 버릇을 못 버리고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생각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전(前) 빨갱이, 현(現) 빨갱이, 미래 빨갱이로 분류한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현재에도 빨갱이들은 보수원로들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관념적 존재이다.

보수원로들의 관점에서 보면 진성 빨갱이인 강정구 교수는 일단 구속해서 수사해야 한다.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신체의 자유나 인신구속의 엄격한 적용 등은 빨갱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분들에게는 진성 빨갱이인 강정구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천 법무장관조차 사상적으로 의심의 대상이 되는 법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누가 아는가? 이분들이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면 독자들 중 누군들 남산이나 서빙고동으로 끌려가 험한 꼴을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한편 원로보수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짝을 이루는 시장경제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대통령에게 시장경제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강남'과 '삼성' 때리기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가 금융을 틀어쥐고 임의대로 자원을 배분하며 집중적으로 재벌을 육성했을 때 이분들은 무얼 하시고 계셨더라? 불로소득으로 피둥피둥 비대해지고 있는 강남에 감질 나는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고,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다 못해 헌법조차 우습게(?) 아는 삼성에 더 정확히 말해서 이건희 부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적법한 수사를 하는 것이 어째서 '강남'과 '삼성' 때리기라는 말인가?

북한에 대한 보수원로들의 인식은 한국전쟁 때로부터 한 치도 변화하지 않은 듯해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단 한번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옹호자가 아니었던 보수원로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공공연히 국가변란을 선동하는 당신들에게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지 않을 만큼 세상이 좋아졌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길 바란다.

과거 당신들이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놓은 대한민국에 기여할 유일한 길은 그 뿐이다.  

200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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