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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원 생의 국보법 발표내용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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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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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이 달린 세부내용까지 포함된 내용은 첨부화일로 올려드립니다.
행복한 세상은 국가보안법 폐지로!
- 성공회대 대학원 발표내용 이창희-
1. 들어가며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반인권적 피해사례가 넘치고 있고, 법적 근거에서도 죄형법정주의 등의 원칙을 넘어서는 악법성이 존재하며, 독재정권 유지에 악용되어왔던 반민주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조국의 분단을 극복하고자 했던 통일인사를 처벌한 반통일성 등이 명백한 근거이다.
하기에, 국가보안법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 국제규약을 관장하는 UN 인권위원회으로부터 폐지 권고를 받았으며, 국내의 양심적 여론으로부터 폐지의 비판을 듣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가 국민 다수 여론으로 자리잡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2004년 5월 8일 중앙일보 조사에서 국가보안법 문제와 관련, ‘개정(52.3%). 폐지(21.1%)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 73.4%를 차지한 반면, ‘존속’ 의견은 26.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앞의 문제 등으로 국가보안법의 개정에는 동의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을 때는 다수가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반대 의견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민족 대결 상태에서 오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고, 분단으로 인한 피해의식을 가지기 때문이다. 점진적인 개정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당장의 폐지에는 부정적인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양심적 인사들은 이에 주목하여 여론을 형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국민의 30%가 진보에 동의하고, 30%가 수구에 경도된 한국 사회의 정치의식 지형에서 나머지 40%의 의견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진정한 개혁의 관건이다.
따라서 당위적이고, 원칙적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리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논리가 홍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드리운 어두운 피해의식의 그림자를 지우고, 국가보안법 폐지가 행복한 세상을 열어가는 지름길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행복해지는 다섯 가지 이야기
① 국가보안법 폐지는 과거를 위로하고 미래를 새롭게 여는 축제
모든 역사의 시작은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본질이기도 하다. 미래를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의 분석을 거울삼아 오늘과 미래의 좌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분단과 독재 등 어렵고 복잡한 한국사회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도 제대로 몰랐던 이념에 의해 서로 많이 싸우고 죽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국전쟁이다. 이제 우리는 이념으로 죽어간 남과 북의 억울한 영혼을 달래야 하며, 더 이상 그 영혼에 대해 이념적 단죄를 내려서는 안 된다. 이러한 약속이 바로 국가보안법 폐지인 것이다. 최근 제주도에서 1948년 당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반대를 외치다가 3만 명이 죽어간 ‘4.3’사건에 대해 범도민차원의 합동위령제를 지냈듯이 ‘한국전쟁’ 등 기간 역사에서 오랜 고생을 한 노인들이 더 이상 “빨갱이는 모두 죽어야 돼”를 외치지 않고 자신과 그들 모두에게 속죄하고, 위로하는 역사가 국가보안법 폐지의 역사가 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1997년말 펴낸 <한국전쟁>에서 남한의 민간인 피해는 99만968명이고, 그 중 12만8936명이 학살당했으며, 그 학살의 주체는 북한 인민군과 남한 좌익이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는 4.19 직후의 자료나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보도연맹원, 예비검속자 학살이 30여만명, 형무소 수감자 학살이 4~5만명, 유격대 토벌과정에서 죽은 민간인이 10여만명, 부역자 색출과정에서 죽은 이들이 최소 10~20만명, 미군 폭격의 희생자들이 10여만명, 북한 인민군 등에게 죽은 이들이 약 10만명 등이라고 한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편(행정자치부 민간단체 지원사업),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진상규명을 위한 총서>2002년 참조.
이 가운데 보도연맹원으로 전쟁이 나자마자 죽어간 30만여명은 모두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피해자이다. 1949년 12월 2일 국가보안법 1차 개정에서 ‘보도구금과 보도소 설치’ 조항 박원순 저, 1992, <국가보안법 연구1>, 역사비평, 110~111쪽
을 신설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좌익 사상범을 전향시키고 향후 관리하기위한 제도로서 이미 처벌받고 나온 사람들을 다시 교화한다는 것이기에 ‘죄형법정주의’에도,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최근 관객 1115만명이 본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에도 나오듯이 가난함에 밀가루 배급표를 받기위해 보도연맹원에 가입하였다가 학살당하는 장면은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형무소 수감자 학살 피해자 “1949년 한 해에 국가보안법에 의해 입건된 숫자만 118,621명에 이른다는 수치가 나타나며, 당시 형무소에 수용된 전체 수감자의 8할이 국가보안법에 의한 ‘좌익수’라는 보고도 있다.” 박원순 저, 1992, <국가보안법연구 2>, 역사비평, 16쪽.
도 비슷한 경우이다.
1945년 해방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일제 말에도 우파 민족주의자들이 대부분 침묵하거나 전향한 반면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가장 강렬하게 싸웠습니다 2004년 <월간 말> 10월호, ‘수구세력과 과거사 청산- 박세일 의원 인터뷰’ 참조
”라고 한나라당 박세일 의원도 인정하듯이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싸운 사회주의 독립투사의 말에서 가난한 사람들도 평등하게 살 수 있다는 사회주의를 잘 모르지만 지지하였다. 당시 남한 인구가 약 1,600만명이었는데, 미군정의 여론조사 결과 70%가 사회주의를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지지가 국가보안법에 의한 대량학살을 낳게 한 것이다. 결국, 당시 커다란 사회문제를 모조리 학살로서 처리한 것이다. 실형선고 7명(나중에 모두 풀려남)에 그친 ‘경미한 친일청산’ 대신 반공청산은 너무나도 과도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악법의 잔인한 기운은 대폭 줄어들기는 했지만 최근까지 유지되었다. 1968년부터 1990년까지 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에 흡수통합된 반공법까지 포함) 사건에서는 일반 형사사건에 비해 사형과 무기 등 중형 선고율이 높게 나타났다. 1심 사형선고인원이 122명으로 같은 기간 전체 사형선고 인원 593명의 20.6%를 차지했다. 국가인권위원회, 2004년 <인권> 6월호, 송소연 ‘국가보안법 적용에 나타난 인권실태’, 31쪽
당시 상황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라면 이제라도 반목을 딛고 ‘국가보안법 폐지’로 억울한 영혼들에게 제사를 잘 지내서 모두 마음 편히 다리를 뻗고 자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과거를 씻고 내일로 전진하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축제’가 되게 해야 할 것이다.
② 진정한 화합의 길에서 국가보안법은 사라져야 한다.
2004년 9월 9일 이른바 시국원로 1,400여명이 ‘자유와 민주주의 사수를 위한 시국선언’을 하였다. 이들의 면면 위와 동일, ‘시국선언 원로 과거행적 입체분석’ 참조
을 보면 과거 군사쿠테타의 주역이었고, 부정비리의 주범이었으며, 독재정치의 공범들이었다. 이들의 시국선언은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보다는 <월간조선> 편집장인 조갑제의 “대한민국은 돈의 힘으로 지켜질 것이다”라는 말처럼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위기 『시국선언자 1,400여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시스템 사회운동’ 지만원 대표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개인적으로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의외의 이야기였으나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밝힌 국보법 폐지 찬성이유는 조 편집장이 말한 ‘국민 저항권’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다음이 그 시나리오다. “올해 11월,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합세로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 이후 한국에서 암약하고 있는 간첩, 또는 좌익세력들이 공공연하게 정체를 드러낸다.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는 김정일의 얼굴이 그려진 각종 친북 유인물이 부착되고 좌익세력들이 공공연하게 집회를 열어 인공기를 나부낀다. 이 과정에서 진보를 가장한 각종 좌익매체들이 친일 청산 등을 이유로 대한민국을 ‘북침’이라고 가르친다. 이런 분위기에서 득세하는 것은 소위 못 배운(?) 완장부대들이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면 애국세력들이 이를 참지 못하게 된다. 비율로 볼 때 좌익은 2, 우익은 8이다. 특히, HID 등 군사훈련을 받은 우익들이 전면에 나서 좌익들을 폭력으로 응징하게 된다. 북한은 미국의 존재 때문에 감히 남침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는 다시 우익정권이 들어서게 된다.”』위와 동일, ‘과거청산 막아선 우익, 혁명을 꿈꾸다’, 59~60쪽.
가 온다”는 가진 자들의 협박이다. 많은 국민들은 부정한 기득권들을 보면서 개탄하였지만, 이들로 인한 사회경제적 혼란에 대해서도 염려한다. 협박이 일정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런 류의 협박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이 보장되는 ‘국가안보’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정한 국가안보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한 사회적 통합력으로 확보되는 것이며, 인권의 세기라고 일컬어지는 21세기 현 시대의 안보개념은 국가논리가 아닌,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 개인의 ‘인권 안보’의 집합적 개념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그들이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수구가 아닌 시대의 흐름에 함께 하며 도덕을 중시하는 전통을 유지하고자 하는 ‘합리적 보수’를 자처한다면 국가보안법 이데올로기에 의존해서는 결코 안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이데올로기는 냉전시대 반공이데올로기이며, 오늘의 반북 이데올로기이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과의 교역량이 미국보다 앞서고 있으며, 그 중국이 이북에 대해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는 마당에, 중국과의 무역을 이북에 대한 이적행위를 이유로 중단할 수 없다. 옆의 큰 나라와 교역을 많이 하고, 같은 민족과 친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는 물의 흐름과도 같으며 결코 시대의 물길을 거스릴 수 없는 것이다. 동시에, 반민족은 전통이 아니다. 순간의 갈등이 잠깐의 반목과 지체를 가져올 수 있어도 미래의 모든 것을 지체시킬 수 없다.
이제 우리 사회는 미래를 위해 ‘사회적 대화합’을 일구어내야 한다. 그것의 시작이 국가보안법 폐지이다. 분단과 독재의 역사에서 민주와 통일에 앞장서다 국가보안법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가해자였던 과거 수구기득권들이 화해를 함으로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손을 내밀며 어두운 과거로 인해 두려워하는 가해자의 집을 방문하여 화해의 꽃을 꽂으며 ‘국가보안법 폐지’의 국민대화합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이
따뜻하게 관용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속에서 수구 기득권 세력은 흑백갈등으로 얼룩졌던 국가의 경제현실을 타개하고 진정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발전을 위해 인종차별정책을 폐지하며 잘못된 과거에 대해 용서를 구했던 백인의 모습에서 자신을 찾아야 할 것이다.
③ 민족의 발전을 국가보안법 폐지에서 찾는다.
인류 역사에서 화해는 커다란 발전을 항상 가져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이다. 독일(550만명 희생자)은 5,200만명(전 세계 군인 2,700만명, 민간인 2,500만명)의 희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프랑스(60만명 희생자)를 침공하여 1944년까지 5년간 프랑스를 점령하였고, 프랑스에 독일의 위성정부인 ‘비시정권’을 세웠다. 해방후 프랑스는 나치 협력자 가운데 2,071명을 처벌하고 4만명을 감옥으로 보냈다. 하지만, 나라의 경제 발전과 유럽의 안보를 위해 독일과 화해를 하였다. 전쟁이 끝난 지 불과 6년만이다. 즉, 1950년 프랑스의 외무장관 슈만이 프랑스․독일 석탄철강공동시장 설립안을 제안하여 1951년 유럽 석탄철강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전후 유럽의 부흥을 이끌었고, 오늘날 EU의 모태가 된 것이다. 이러한 힘으로 현재 유럽은 미국에 대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스스로 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
이와 비슷한 예를 우리도 갖고 있다. 바로 1992년 한․ 중수교이다. 양국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한국은 군인만 사망 약 14만명, 부상 약70만명, 실종 약 13만명, 중국은 군인 사망 약 90만명을 낸 ‘적대국 관계’였다. 하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중여행 금지’를 깨며 급속도로 친해져 4년뒤 수교를 하였고 지금은 미국보다 경제교역량이 더 많다. 최근 한국이 수출 2000억 달러로 세계 10위권의 수출대국이 된 것도 중국과의 교류 영향이 크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중국과의 관계에서 북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큰 나라’에 대한 방비로 예전 교전의 기억을 크게 하고, 적대관계를 이유로 수교를 기피했다면 이러한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화해의 결단에서 얻어지는 ‘발전의 시너지’이다. 최근 시베리아의 가스관이 남과 북의 갈등으로 한반도로 오지 않고, 곧장 일본으로 갈 것 같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남․북 갈등이 민족의 번영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기간의 어느 사건보다는 커다란 남북간의 화해의 제스처가 될 것이다. 이미 ‘대북 식량원조’ 등 기간 남의 화해 노력이 금강산 관광특구 및 신의주특구, 개성공단 개방 등 북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오히려 미국이 우리 민족의 긍정적 변화를 ‘전략물자 금수조처’, ‘이북산 물품 수출 금지’ 등을 이야기하며 막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나는 너를 민족으로 여기지,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강력한 의사 전달이다. 따라서, 이는 북의 커다란 호응을 불러올 것이며, 동북아 시대의 경제발전에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우리는 번영의 미래를 보고 오늘의 국가보안법이라는 악습을 과감히 폐지해야 하는 것이다.
④ 국가보안법 폐지에서 모두가 ‘자유’를 얻어야 한다.
중학교 교과서에서 정리되는 한국전쟁의 3대 피해는 엄청난 인명피해와 국토의 황폐화, 그리고 정신적 피해이다. 남과 북 모두 황폐화된 국토는 어느 정도 복구하였으나, 사람의 피해에 따른 정신적 피해는 아직도 치유를 하고 있지 못한 듯 하다.
최근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 ‘좌파정권’ “이원기 메릴린치 전무는 지난 29일 재정경제부가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외국인이 보는 한국의 경제·주식시장’이란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과 법안은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고 단지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법인세 인하, 특별소비세 폐지, 경기부양책 등은 친기업적인 정책인 데다, 좌파정책으로 불리는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은 과거 정부 때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 정치의 분열과 반목은 개방·통합사회로 가는 성장통이고, 소비침체는 가계의 소비거품을 걷어낸 결과이기 때문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또 경제 양극화 현상에 대해 “한국에서도 무한경쟁·적자생존이라는 무서운 시장주의가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기업이 잘돼도 그것이 가계소득이나 고용 증가를 가져오지 않는 ‘기업과 개인의 연결고리 단절현상’도 심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로 △반도체·통신·인터넷·게임 등 신산업 성장 △자동차·조선·철강 등 전통산업의 경쟁력 △부상하는 중국경제의 최대 수혜국 △벤처 및 서비스업 창업붐에서 검증된 기업가적 국민성 등을 꼽은 뒤, “일부 한국 언론과 정치인이 한국경제에 대해 자해를 넘어 저주를 퍼붓는 동안 외국인들은 한국기업의 주식을 끊임없이 사들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4년 11월 1일자 <한겨레 신문>, ‘메를린치, 참여정부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이라면서 박근혜 대표가 “정부는 국민 재산인 연기금이나 산업은행의 공적 자금을 주식과 부동산 투장에 동원하려 하는데 이는 우리 경제가 ‘연기금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현상” 2004년 10월 28일자 <한겨레신문>, ‘연기금 투자는 사회주의 논란’ 참조
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우스운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선진국에서도 연기금으로 주식에 투자하고 투자한 회사에 대해 투명성과 올바른 운영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발언의 배경에는 “사회주의는 무조건 안된다”라는, 즉 ‘빨갱이는 적’이라는 ‘국가보안법’식의 대결 정신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국가보안법 피해자였던 ‘386세대 의원’들도 자신들의 정책적 소견에 대해서 ‘좌파’라는 지적에 이런 저런 해명을 하는 모습도 역시 국가보안법 피해의식에 갇혀있는 모습일 수밖에 없다. 필자도 국가보안법 피해자로서 글을 쓸 적이나 책을 읽을 때마다 가끔 자기검열과정을 거치곤 한다.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흑백논리에 갇혀있는 정신과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는 정신 등으로는 자유로운 정신에 입각한 미래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정신에 대한 법적 굴레를 없애는 일은 다름 아닌 ‘국가보안법 폐지’이다.
이는 우리의 민주주의 권리와도 이어진다. 매 선거시기 마다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후보들을 검열해왔고, 올바른 선택을 바라는 국민들에게 ‘거짓 오해’를 하게 하는 등 다양한 정신적 피해를 입혔다. 대표적인 국가보안법 피해사례가 평화통일을 외치며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200만표를 획득한 조봉암 진보당 당수에 대한 사형 사건이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이승만 정권은 현재 공식적인 교과서에서 ‘반공독재’로 표기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3번씩이나 대통령을 하고, 더 하고 싶어 아예 직선제를 폐기하는 ‘유신헌법’을 선포했으며, 이에 항거하는 반독재 민주화론자들을 모두 빨갱이로 몰아서 탄압하였다.
현재 이른바 ‘보수’를 자처한다는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예전에는 피해를 본 사람들도 많지만, 국가보안법도 많이 개정되었고, 이제 피해보는 사람도 없는데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서 굳이 충돌을 일으키며 폐지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되묻고 있다. 그렇다면 오욕의 국가보안법을 굳이 간직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가슴 아프게도 참여정부에도 국가보안법 피해자는 발생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9개월 동안 국가보안법 구속자는 58명이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2003년, <참여정부 출범 9개월 국가보안법 적용실태 보고서>,참조
대부분 과거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총련소속 단과대 학생회장이나 총학생회장들이다. 앞의 논리라면 ‘자유로운 대학교’의 학생 선거에 의해 뽑힌 그들은 국가보안법 피해자가 아닌 소위 ‘간첩’이 되는 것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듯이 국회의원 10명을 낸 합법정당 ‘민주노동당’도 여전히 공안당국의 감시대상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1년 이후 3년 6개월간 범죄유형별 ‘통신제한조치허가서’(이른바 감청영장) 1703건 가운데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이 911건으로 52.7%를 차지했고 살인 사건은 20.3%, 강도사건은 7% 등 이었으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감청비율은 2001년 41.8%, 2002년 54.0%, 2003년 70.1% 등으로 매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정보화시대에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2004년 10월 4일자 <한겨레신문>, ‘감청 절반이상 보안법 위반 조사탓’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었을 때 제주도가 탐라공화국을 외치며 처벌할 수 없다라는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의 황당한 발상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답답한 정신적 상태에 기인한 현실의 피해에서 벗어나 서로 자유롭게 사유하고, 민주주의의 공기를 만끽할 수 있게 국가보안법을 반드시 없애야 한다.
⑤ 국가보안법 폐지로 새로운 민족문화를!
오늘날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금강산으로 모꼬지를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 대학생들은 금강산에 가기 전에 일종의 ‘반공, 냉전교육’을 받는다. 실제 대학생들은 그 시간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많은 어린이들이 북녘동포돕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돈을 내고 그날 일기장에 ‘북한에 가봤으면 좋겠다’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이 있는지 조차 모른다.
오늘 국가보안법은 실생활에서 여러 문화를 규제하다.
지난 1964년 <7인의 포로>라는 작품에서 한국군 포로가 북한군 장교에게 “차임 멋진 남자야”라고 말하는 장면을 넣었다가 국가보안법으로 영화감독 이만희씨가 구속되었다. 그리고 1981년 9월 연세대생 박영창씨가 쓴 무협소설 <무림파천황>에서 강북무림이 강남무림을 향해 남진하는 것이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고 하여 실형 2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또한, 2000년 대구 나이트 클럽 웨이터 전동 창씨는 남북정상회담 직후 승용차에 북한 인공이 그림을 현수막에 걸고, 사람들에게 ‘금정일 부킹위원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나누어주었다가 그날 저녁으로 나이트클럽에 들이 닫친 경찰에 의해 ‘찬양․고무’협의로 하룻밤 내내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2004,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 ‘사례로 보는 황당한 국가보안법’ 참조
경찰청산하 공안문제연구소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서양에서도 저명한 소위 ‘우파’ 사회학 도서를 막스가 마르크스와 이름이 비슷하다하여 국가보안법상 이적도서로 분류하였다. 영화까지 제작된 베스트셀러 ‘태백산맥’도 이적성여부를 따지기위해 아직 국가보안법 재판에 계류 중이다.
하기에, 국가보안법이 없어지지 않는 한 “북한의 금강산이 아름답다”고 한 금강산에 간 대학생들이 무더기로 국가보안법 찬양․고무죄로 감옥에 능히 갈 수 있다.
과거 삼국시대 통일이 되어 좋아진 것으로 민족문화의 발전을 꼽는다. 비록 삼국으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말이 비슷했던 민족이 하나로 통일되면서 백제의 석공예 등이 가미되면서 ‘석굴암 본존불’ 등의 세계문화유산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당시에는 삼국이 서로 치열하게 대결하였지만, 수천년이 지난 지금 한국 역사에는 백제의 계백이나 고구려의 연개소문, 신라의 김유신 모두를 자랑스러운 우리의 조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서 오늘로부터 백여년이 흐른 뒤에 나오는 역사책에도 지금과 같은 국가보안법식 흑백논리의 문화, 역사적 서술이 존재할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존중과 배움의 논리로 탄생하는 ‘새로운 문화’는 갇혀있는 대결적 ‘국가보안법’의 문화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 정부는 통일에 있어 문화 등의 교류를 앞세우고 있다. 따라서, 대결의 문화를 강요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3. 마치며
요즈음 국민의 여론과 달리 많은 정치인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과감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 정치인의 결단을 통해 혼란해하는 국민 여론을 옳게 이끌어내는 모습이 매우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새로움을 창출하는 ‘정치의 미학’인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후 내란목적단체 등이 포함된 형법보완’으로 의원총회를 통해 입장을 모았다. 하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의 시민단체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동시에 주관적 해석여지가 많은 ‘내란목적단체’ 신설 등에 대해 반대하며, 1953년 한국전쟁시 탄생한 형법(전쟁 상황에 만들어진 형법이라 충분히 국가보안법을 대체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김병로 대법원장은 형법안과 국가보안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바 있다. “지금 6.25 사변을 당해…특수한 법률로 국가보안법 혹은 비상조치법 이러한 것이 국회에서 임시로 제정하신 줄 안다. 지금 와서는 그러한 다기다난한 것을 다 없애고 이 형법만 가지고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 또는 장래를 전망하면서 능히 우리 형벌법의 목적을 달할 수가 있겠다는 고려를 해보았다. 지금 국가보안법이 제일 중요한 대상인데 이 형법과 대조해 검토해볼 때 형에 가서 다소 경중의 차이가 있을는지도 모르나 이 형법전 가지고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처벌할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지 않은가 하는 그 정도까지 생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2004년 8월 23일,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결정문, 11쪽
의 ‘적국’ 조항의 시대 변화상 미흡한 점 “국가보안법은 완전한 폐지 외에 다른 대안은 필요 없다. 우리나라 형법은 53년 9월 18일 제정된 법률로 전시 형법이다. 그래서 적국을 위한 간첩행위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미국을 위한 간첩행위를 해도 처벌하지 못한다. 로버트 김은 미국에서 한국을 위해 일했다고 간첩죄로 처벌받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누군가 미국을 위해 정보를 내줘도 처벌할 수 없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므로? 이것은 고쳐야 한다. 그러나 다른 개정은 필요 없다고 본다. 또 열린우리당은 형법 보완 조항에 국가보안법 유사조항을 끌어넣으면서 국보법을 잔존시키려고 하고 있다. 특히 형법 제87조의2(신설) 내란목적단체조직은 국보법 제2조와 닮아 있다. 이 법이 새로 만들어지면 과거 독재정권시절 툭 하면 만들어졌던 조작사건, 조직사건의 문제가 여전히 남게 된다. 사람들은 독재정권이 사라졌으므로 이 조항을 부당하게 적용 받을 리 없다고 하지만, 이 법이 있는 한 위험은 계속 남아 있게 마련이다.” 2004년 10월 20일자 <오마이뉴스> 전 민변회장 최병모 변호사 인터뷰, ‘국론분열, 조․중․동 선동 횡행할 뿐’
을 짚어 “제98조 (간첩) ①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위하여 간첩하거나 대한민국의 이익에 반하여 간첩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 군사상의 기밀을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위하여 또는 대한민국의 이익에 반하여 누설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라며 변화한 시대에서 적국의 모호함도, 북한을 외국으로 바라보게 되는 모순도 없앤 형법개정안(나머지 항은 과거와 동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2004년 10월 28일 성명서, ‘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및 형법개정안에 대한 법률의견서’
을 제출하였다.
정부가 애매한 ‘내란목적단체’조항도 없애는 시대의 결단으로 국민의 여론을 옳게 창출하는 역사를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바른 결단이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국가보안법의 ‘구체적인 역사’, ‘남용사례’, ‘폐지 근거’, ‘형법과의 관계’, ‘ 폐지 반박논리’ 등은 2004년 8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의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결정문(전문)’을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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