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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남영동 보안분실 담장에 매달린 '보라색 리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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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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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보안분실 담장에 매달린 '보라색 리본'
[현장] 권오헌씨 등 국보법 피해자, 남영동 보안분실 방문
김지은/남소연/김도균(Luna) 기자
학계·종교계·민주화운동계·일반시민 등 국보법 피해자들이 19일 오후 남영동 보안분실 앞에서 국보법 즉각 폐지를 요구하며 보안분실 담벼락 철조망에 '고난'과 '인권'을 상징하는 보라색 리본을 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남영동 보안분실 담벼락 철조망에 국보법 피해자들이 매단 보라색 리본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후의 대안으로 '형법개정론' 등의 입법안을 20일 국회에 제출키로 한 가운데 이를 둘러싼 시민단체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19일에는 학계·종교계·민주화운동계·일반 시민 등 국보법 피해자들이 인권 침해의 온상인 경찰청 남영동 보안분실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는 한편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나 국보법은 폐지만으로 충분하다는 점을 설득했다.
고문 산실 '보안분실' 찾은 피해자들 "국보법과 함께 없어져야"
19일 낮 1시 20분 남영동 보안분실의 높다란 담장에는 '고난'과 '인권'을 상징하는 보라색 리본이 매달렸다.
지난 1979년 이른바 '남민전 사건'으로 이곳에 끌려와 물고문, 전기고문 등의 고초를 당했던 권오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후원회장을 비롯해 강정구 동국대 교수, 시민 안덕영씨 등 30여명의 국보법 피해자들이 이곳을 찾아 국보법 폐지를 요구하며 담장에 보라색 리본을 단 것. 남영동 보안분실은 박종철씨가 물고문으로 '사체'가 돼 실려나갔던 이른바 국보법에 의한 인권침해의 상징적 장소다.
"개인적으로 치욕스럽고 지옥같은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2주일이 넘게 갇혀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미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이 이곳에서 고문을 당해 죽어 나갔던 것을 알았던 터라 나는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대열의 맨 앞에서 "손톱뽑기, 물고문, 성고문, 잠 안재우기… 차라리 죽고 싶었습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있던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이날 26년만에 남영동 보안분실 앞을 다시 찾은 권 회장은 당시 고문의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내 손을 뒤로 묶고 물고문할 때 내가 얼마나 발버둥을 쳤던지 팔목을 죄고 있던 쇠고랑이 잘려나갈 정도였습니다. 이제 이곳은 국보법과 함께 사라져야 합니다."
역시 남민전 사건으로 남영동 보안분실에서 고초를 겪었던 안재구씨도 보안분실을 올려다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 입을 뗐다.
"앞에 서서 이 건물을 보니 묘하고 착찹합니다. 지난 79년 새벽에 잡혀 이곳에 끌려왔을 때는 '해양연구소'라는 위장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작은 창문이 있는 방이 취조실입니다. 바깥에서는 저 창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통 알 길이 없습니다."
안씨는 아직도 생생하다는 듯 "이곳에서 많은 동지들과 물고문, 전기고문 등 온갖 악행을 당했다"며 "사람이 어지간해서는 견디기 힘든 고문을 위한 도구와 장치는 이곳에 다 모여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국보법은 국가체제의 전복이 아닌 유신, 군사독재와 맞서 싸웠던 나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법"이라며 "이제는 국보법도 보안분실도 모두 폐지해 후세에는 이곳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던 선조들이 고초를 겪었던 역사의 장소'로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국보법 피해자들이 19일 오후 남영동 보안분실 앞에서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낱낱이 지적하자 대공분실 안에서 한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19일 오후 남영동 보안분실 앞에 모인 국보법 피해자들이 '국가보안법 즉각 폐지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국보법 7차 개정이후 인권침해 없었다구요?" 대학강사까지 '간첩'으로 몬 국보법
국보법은 평범한 대학 강사의 삶까지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날 남영동 보안분실을 찾은 안덕영(41·전직 대학강사)씨가 그 대표적인 예. "학교 다닐 때는 ROTC로 주변에 운동권 친구조차 없었던" 안씨는 경찰에 의해 '거물 간첩'로 둔갑됐다.
'불행'은 지난 2002년 5월 8일 시작됐다. 어버이날을 맞아 외출하던 안씨는 아내와 딸이 보는 앞에서 연행돼 홍제동 보안분실에서 조사를 받고 구속됐다.
지명수배를 받거나 이적단체에 가입한 적 조차 없는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는 수사당국에 의해 형법상 간첩죄와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금품수수, 찬양고무 등 10여 가지 죄의 혐의자가 돼있었다.
결국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군사시설보호법 위반 등 4가지 법 위반으로 기소된 그는 구속된지 182일 만에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이후 지난 5월 항소심에서 '간첩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안씨는 "홍제동 보안분실에서 조사를 받으며 4년간 나를 내사해 작성한 6천쪽에 달하는 허위 수사기록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경찰은 평범한 시민인 나까지 간첩으로 몰았다"고 토로했다. 안씨는 "일본에서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을 드나들었던 것 외에 미국과 중국비자조차 없었던 나에게 경찰은 94년에는 미국을, 98년에는 중국을 다녀왔다고 몰았고 심지어 북한까지 다녀왔다며 그 증거로 어린 시절부터 써온 일기 중 일주일치가 없다는 점을 댔다"며 황당해했다.
결국 안씨는 2년여 만에 누명을 벗었으나 그의 상처는 아직도 깊다. 아내와는 이혼을 해야 했고 딸은 초인종이 울리면 이불 속에 들어가 숨는 등 충격 후유증에 시달렸다.
안씨는 "정형근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은 지난 7차 개정 이후 국보법에 의한 인권유린 사례가 없다고 주장하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내 사례"라며 침통해했다.
이날 30여명의 국보법 피해자들은 기자회견을 가진 뒤 남영동 대공분실을 둘러싼 3미터 높이의 담장에 보라색 리본을 매달았다.
하지만 이 리본은 매달린지 채 5분이 안돼 모두 '철거'됐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에 1개 중대의 경찰을 배치하며 현장 경비에 나섰던 경찰은 이들이 자리를 뜨자마자 "보기 흉하다"며 경찰대원 20여명을 동원해 리본을 모두 떼어냈다.
이부영 의장 "반대 여론 무시 못해 vs 피해자들 "폐지 취지 무색"
[현장]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국보법 피해자들 면담
19일 국가보안법 피해자 10여명은 남영동 보안분실을 찾기에 앞서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나 열린우리당의 '형법개정론'에 대한 반대의 뜻과 함께 국보법의 완전 폐지를 바라는 의미에서 '세계 인권국가 희망나무'(소나무 묘목)를 전했다.
이부영 의장 "현실 정치인으로서 반대 여론 무시할 수 없어"
이날 오전 11시 20분부터 영등포동 열린우리당사에서 약 30분간 이뤄진 면담에서 이부영 의장은 "국보법의 완전한 폐지를 바라는 마음은 안다"면서도 "국보법 폐지 후의 안보 불안을 우려하는 분들도 한 배를 타고 가는 국민이므로 현실 정치인으로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론'을 내세웠다.
최근 진보-보수 양측에서 받는 비판을 의식한 듯 "요즘 양쪽에서 압박을 당해 오징어포처럼 납작해지려고 한다"는 말로 입을 연 이 의장은 "국보법으로 피해 당한 심정을 잘 이해하지만 아직 안보 공백을 우려하는 국민들의 심정도 헤아려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 의장은 1) 안보공백 우려 여론을 헤아린다 2) 인권침해 요소는 모두 없앤다 3) 광범위하게 국민 여론을 수렴해서 무리하지 않게 (폐지를) 추진한다는 3가지 원칙으로 당론을 정했다며 "부족한 점을 많이 느끼고 계시겠으나 냉전 분단시대에서 남북교류·협력시대로 넘어가는 일이 간단치가 않다"고 말했다.
"여당의 '폐지후 형법개정론', 폐지 취지 뒤엎는 내용"
이에 이 의장 면담에 나선 강정구(동국대) 교수,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장, 황선(98년 한총련 방북대표), 박정훈(교사)씨 등 10여명의 국보법 피해자들은 열린우리당의 형법개정론은 '국보법 폐지'라는 취지를 뒤엎는 내용임을 설파했다.
강정구 교수는 "이 의장이 말한 '안보불안감'은 실체가 없는 일종의 '신화'"라며 "정치권이 막연한 안보불안감을 악용하고 언론이 이를 부풀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강 교수는 "오히려 정치권에서 안보불안감에 대해 실체적으로 접근해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선씨도 "국보법에 의해 단 1%라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면 그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겠으나 모두 주지하고 있듯 그렇지 않다"며 "열린우리당의 현 당론은 '냉전시대의 종결과 남북화해, 협력을 위해 국보법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취지를 뒤엎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권오헌 회장은 "이미 전국의 형법학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듯 국보법을 폐지해도 형법만으로도 국가안보는 걱정이 없다"며 "찬반 논쟁이 아닌 인권과 남북화해라는 보편적 가치에 맞춰 국보법 완전폐지로 새 시대를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이부영 의장은 공감한다는 듯 "저희가 좀 쑥쓰럽기도 하다"며 "그러나 국정을 해나가는 입장에서는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의 의견도 고려해야 한다. 노를 거꾸로 젓지만 않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이날 면담에서 국보법에 의한 과거의 피해 사실로 고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건을 예로 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면담 거부... "국보법 폐지 동참해야" 공개 서한
한편, 열린우리당을 방문했던 국보법 피해자 10여명은 이날 오후 한나라당사를 방문하려 했으나 당사 앞을 막은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다. 박근혜 대표와의 면담을 추진한 유영업(전 한총련 의장)씨는 "그간 수차례 한나라당 쪽에 박 대표를 면담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으나 일정 등을 이유로 면담이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이날 국보법 피해자들은 염창동 한나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대표에게 보내는 글'을 발표하고 "이제 한나라당도 과거 오명의 역사를 벗고 인권과 민주주의, 통일로 향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국보법을 과감히 폐지해 '인권정당'으로서 새 출발을 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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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단 농성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