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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펌]"너는 '고무'하라, 나는 '찬양'하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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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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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고무'하라, 나는 '찬양'하리니"
[오마이뉴스 2004-10-10 12:14]
[오마이뉴스 조호진 기자]
가난한 이웃 연민해도 이적, 나이 어린
노동자 못 살겠다 구호 외쳐도 이적, 시인이나
작가 농민의 아픔을 울었다고 이적, 학생들
나라에서 금한 책 읽었다고 이적, 목사 신부 승려
구국 기도회 올렸다고 이적, 술 취한 영세농 홧김에
나라 욕했다고 이적, 사범 갓 졸업한 여선생
눈 초롱한 아이들에게 이북에도 우리와 같은 얼굴
살고 있다, 눈물 글썽였다고 이적,
제주 4.3 말했다고 이적, 80년 광주 말했다고 이적,
함부로 눈 치켜떴다고 이적, 묻는 말에 대답 없다고 이적,
대중 가사 불온하다고 이적, 붉은 옷 입었다고 이적,
벌건 대낮 혼자서 산에 올랐다고 이적,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시와 소설 읽었다고 이적,
이적, 이적, 이적, 이적.....
눈 떠도 이적, 눈 감아도 이적
네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온 세상은 오직 불신과 이적뿐이었다.
이재무 시인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전국작가대회'(이하 작가대회)에서 낭송한 '너는 죽어 티끌로라도 오지 말아라'라는 제목의 국보법 조시(弔詩)이다. 이 시인은 "이제 죄 없는 사람 가두고 죽이는 악법은 사라져야 한다"며 "죽어서 다시는 이 땅에 티끌조차라도 오지 말아라"고 조종(弔鐘)을 울렸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산하 자유실천위원회(위원장 이인휘)가 주최한 작가대회는 9일 오후 6시 30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렸다. 작가 및 시민단체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작가대회에서는 고 김남주 시인과 이광웅 시인 등 국보법으로 고초를 겪다 세상을 뜬 작가와 국보법 피해 현역 시인들의 시가 낭송됐다.
이날 염무웅 작가회의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국보법은 냉전체제가 끝났는데도 묘지로 들어가지 않고 의식과 무의식을 억누르며 꿈결까지 지배하고 있다"며 "국보법이 철폐되어야 작가의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국보법 폐지로 김구 선생이 꿈꾼 문화대국이 앞당겨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1965년 소설 '분지'로 필화사건을 겪으며 보안법 위반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소설가 남정현씨는 "국보법의 태생이 일제 치하 치안유지법이었다"며 "6·15 남북공동선언까지 했는데도 국보법을 철폐해야 하는 처지가 한스럽고 억울하다"고 한탄했다.
남씨는 이어 "국보법을 놔둔 채 6·15 남북공동선언과 평화통일, 학문과 예술의 발전을 논하는 것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며 "거짓을 벗겨내고 진실을 드러내야 하는 문학인들이 국보법을 땅속깊이 묻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붉은 산'이 김일성을 암시했다고?
이어 마이크를 잡은 오봉옥 시인은 자신의 시집 '붉은산 검은피'를 무대에 올리려 했던 노래패 '희망새'와 인터넷에 올렸던 네티즌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시집을 소지하고 있던 문학 청년들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초를 겪었다고 밝혔다.
오 시인은 "국보법이 국민분열을 획책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나 잡아가야 한다"며 "우리당이 국보법 폐지에 한발 빼고 있는데 계속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면 펜을 꺾고 모여 힘으로 대응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시인은 "당시 검찰에 끌려가 조사 과정에서 제목이 '왜 붉은산 검은피'냐고 물어 산이 붉어서 붉은 산이라고 했고 화순 탄광촌을 다룬 시여서 검은 피라고 했다. 이 시집의 원제는 '아버지'였는데 정도상 소설가가 '붉은산 검은피'를 제안해 받아들였는데 검찰과 경찰은 붉은 산은 김일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냐고 몰았다"며 "공안당국의 국보법 몰기는 한 편의 코미디였다"고 힐책했다.
이날 작가회의는 '국보법 폐지를 염원하는 작가일동'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에서 "국가보안법이 남긴 업적이 있다면 비열한 색깔공세와 불법연행, 장기구금, 고문과 조작이었다"며 "그것이 국민에게 경험시킨 것이 있다면 우리 의식의 심층까지 억압하고 자기검열을 강요하는 통제장치의 기능이었다. 이는 인간성에 대한 침탈이었으며 민족에 대한 학대였다"고 규탄했다.
작가회의는 또 "이 같은 악법이 없다해도 우리는 냉전의 감정, 전쟁과 굶주림, 이념갈등으로 비참한 인간 모멸과 사상의 자유를 구가하기 어려운 상처투성이의 민족"이라며 "당국이여! 여·야 정치인들이여! 국보법이라는 지독한 야만에 대한 향수를 버려라! 민족적 불행을 이용하지 말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정치하라"고 강변했다.
이어 시 낭송이 시작됐다. 강신애 시인과 안상학 시인은 국보법에 고초를 겪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故) 김남주 시인의 '전향을 생각하며', 고(故) 이광웅 시인의 '그 때 그 순간 악마가……'를 낭송했다.
고(故) 문익환 목사의 평전을 썼던 김형수 시인은 자신의 창작시 '예언자'에서 "(전략)그는 신랑이 신부 방을 찾듯이 감옥에 간다고 웃기곤 했다/22개월 옥살이 하고 6개월 설교하고, 15개월 살고 나서 11개월 강연하고/가두는 자가 쓰러질 때까지, 미워하는 자가 미쳐서 정상이 될 때까지/(중략) /묘지에 묻히던 순간에도 형 집행정지자였다/그날 밤, 하늘의 별들이 모조리 쏟아져버릴 것 같았다(하략)"고 문 목사의 삶과 죽음을 애도했다.
철근노동자인 김해화 시인은 '그 놈이 있다'라는 제목의 시에서 "(전략)어미와 아비에게 방패와 총칼을 휘두르는/패륜아로 만드는 놈/꽃다운 누이의 가슴을 난도질하고/아우의 심장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기는/사람 백정으로 만드는 놈/아직도 그 놈이 있다/국가보안법이 있다"고 국보법은 인륜마저 저버리게 한 악법이라고 꼬집었다.
택도 없다 어서가라 꼴도 보기 싫다 국가보안법
신부인 최자웅 시인은 '기러기 소식 -들꽃, 강물 그리고 새에 부치는 연가'라는 제목의 시에서 "남북의 민들레들 모두 모여라/ 갈라진 하늘과 분계선 넘어/남북의 모든 강물과 시내/ 합수하여 흘러라/흉측한 이름으로/비참한 짐승으로 죽어간/간첩/빨갱이/빨치산의 넋들/주인없는 무덤들/(중략)/황천길/하얀 극락에도 이르지 못하는/저 하늘 가에/이제 기러기 날으라(하략)"고 분단에 아픔을 노래했다.
박남준 시인은 실상사 도법 스님과 함께 탁발순례중이다. 그는 "작가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이념대립에 의해 희생된 좌우 넋들을 달래고 왔다"고 밝혔다. 박 시인은 '택도 없다'라는 제목의 시에서 "(전략)다시는 오지마라 헛된 개꿈도 꾸지마라/자꾸 뒤는 왜 돌아보느냐 손이라도 흔들어주랴/택도 없다 어서가라 꼴도 보기 싫다 국가보안법"이라고 낭송했다.
국보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른 바 있는 박영희 시인은 "가석방으로 출소해 자유를 누리는 줄 알았는데 국보법 밑에 새끼가 있었는데 그게 보안관찰법이었다"며 자신의 시 '가석방자의 노래 1 -밥상'에서 "(전략)밥 먹는 것까지 감시당해야 한다는 것/한숟갈의 밥 입에 넣어 씹다가/촘촘하게 박힌 쇠창살 눈에 들어올 때면/나는 동물원 울에 갇힌 원숭이를 떠올렸었다(하략)"고 국보법과 보안관찰법에 의한 고통을 시로 노래했다.
그리고 고규태 시인은 '고무·찬양의 노래'를 다음과 같이 낭송했다.
일단 이렇게 하자
장백패랭이, 그대는 한여름에 거기 백두에서 피어라
이 가을녘 소슬바람 고개 드는 때에
한라구절초, 당신은 거기 백록 곁에서 피어라
우리 누리의 들꽃 메꽃들아 그리하여
철따라 삼천리 물따라 팔도강산을 누벼라
일단 이렇게 하자
그 건너 인민군은 이천오백만의 겨레를 위하여
국군은 이 건너에서 생긴 것 다를 바 없는
먹는 것도 다를 바 없는 사천오백만을 위하여
이 한반도의 싱싱한 병사들아 그리하여
적으로부터 칠천만의 목숨을 지켜라
조목조목 우리들의 성문법 또한 이렇게 하자
안으로 독사와 같이 독을 품고
국민에게든 인민에게든 누명과 굴레 씌우는 짓
55년 따로국밥의 허전한 살림살이 위에
영구분단의 거멀못을 씨와 날로 처대는 짓
그런 법 따위 법률 따위 헌신짝으로 던져버리자
그러므로 오늘부터
너는 고무하라 나는 찬양하리니
하나의 태양 아래 한 아침의 황금빛 햇살 속에
조선은 조선으로 대한은 대한으로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를 함께 드높이고저
호시탐탐 고무하리라 시시때때로 찬양하리라
내가 부르마 너는 응답하라
보드랍게 통신하자 그윽한 연인처럼
뜨겁게 회합하자 깨 쏟아지는 신혼의 부부처럼,
너는 잠입하라 나는 탈출하리니
서로의 품속으로 맘속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자
어미의 단가슴 찾는 갓난아기와 같이
고무·찬양이여 통신·회합이여
잠입·탈출이여
서로를 해롭게 하는 것 말고
서로를 아프게 하는 것 말고
서로를 찌르고 무찌는 것 말고
오직 이롭게만 하는
오, 우리들의 평화로운 이적행위여
(고규태 시인의 '고무·찬양의 노래' 시 전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외치던 이들의 시는 광화문 가을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오적' '한라산' '붉은산 검은피'…
국보법에 탄압받은 대표적 필화사건
독재정권에게 양심의 소리를 토하는 작가들은 눈엣가시였다. 이들이 써낸 소설과 시집은 금서(禁書)로 묶여 압수 당했으며 국보법 위반으로 오랏줄에 묶여야 했다. 양성우 시인의 '겨울공화국', 김지하 시인의 '오적', 이산하 시인의 '한라산', 오봉옥 시인의 '붉은산 검은피' 남정현 소설가의 '분지' 현기영 소설가의 '순이삼촌' 등이 필화사건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밖에도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러시아의 소설가 막심고리끼의 '어머니'는 이적표현물로 내몰렸으며 조정래 소설가의 '태백산맥'은 아직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재판에 계류 중이다. 또한 '노동해방문학', '실천문학' '창작과 비평', '사상계', '다리' 등의 문예지들은 필화사건으로 폐간되기까지 했었다.
이날 작가대회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옭아맨 국가보안법을 보다 못한 작가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60년의 야만과 광기로 분단의 땅을 난도질했던 국보법이 아직도 건재한 오늘, 이들의 시낭송은 절규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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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단 농성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