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이 죽느냐, 내가 죽느냐! "


박소희    국보법 마지막 명줄을 끊는 단식농성 2004/12/16
국보법 마지막 명줄을 끊는 단식농성
  - 여의도 농성장에서 사트를 벌이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며 인천에서-

지금 여의도 광장에는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위한 단식농성단 천막이 줄을 잇고 있다. 각 지역에서 올라 온 칠백여 명의 농성단이 늦은 밤 불을 밝히며 광화문 촛불 집회, 거리 선전전, 노상 농성, 한나라당 당사 항의 방문 등 하루 일정을 정리한다. 그 사람들 가운데 11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남편이 있다.

82, 85, 89 이 숫자들은 남편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해이고, 00, 01, 02, 04는 2000년 들어 남편이 단식농성을 했던 해다. 한 해가 빠졌다 싶었더니 2003년에는 우리 가족이 좋은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인천 연수구를 삼보일배하며 다녔다.

1982년과 85년 학생으로서 이 땅의 민주화와 군사독재정권의 퇴진, 민주적 총학생회 건설을 위해 열심히 산 탓에 국가보안법 적용을 받았고, 1985년에는 젊은 청년들이 모여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청년단체를 구성했다는 죄로 국가보안법 적용을 받았다. 남편의 20대는 그렇게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철창안에서 보내졌다.

21세기 새로운 시대를 운운하며 무엇인가 새로운 물결이 온통 사회에 넘쳐날 것만 같았던 2000년에는 ‘부평미군기지 반환’을 위해 제일 먼저 단식을 결의해 매연과 비바람과 싸우며 노상에서 비닐 거적 한 장으로 몸을 가리고 10여 일간 투쟁했다.

2001년과 2002년. 연수구의 심장을 가르는 수인선 화물열차 지상건설을 반대하며 주민들과 함께 시의회앞에서 장기간 단식농성을 벌여 화물열차의 도심통과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또 다시 주민들을 기만하고 조기착공을 하려는 철도청에 맞서 2003년 연수구 전역을 삼보일배하며 수인선 지상건설을 막아내려 싸웠다.

2004년 마지막 12월. 올해는 별일 없으려니 했는데 이 겨울 칼바람, 겨울비속에 국가보안법철폐를 위해 삭발과 단식농성을 결의, 현재 11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8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형과 함께 달랑 몸둥이 하나 가지고 올라온 서울 생활. 한대잠도 많이 자고 밥 굶기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했다는 남편은 체육시간이 가장 싫었다고 한다. 운동장 수돗가에 나가 물로 굶주린 배를 채워야 했던 그에게 체육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결혼해서 가장 좋은 이유는 50kg를 왔다 갔다했던 깡말랐던 그가 세 끼 밥을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라는 사실에 픽 웃고 말았고, 반찬 한가지 없이 밥에 물을 말아먹더라도 끼니를 거르지 않으려던 그가 가장 싫어하는 밥굶기를 결의하는 것은 바로 그 만큼 결의를 요구하는 상황임을 그와 살아온 세월을 통해 알게 됐다.
머리카락 한 올없이 파리해진 머리와 단식으로 인해 축난 얼굴을 보며 우리 둘째는
“아빠, 아빠.....” 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한다.
지영이는 아빠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빠는 단식투쟁 언제끝나? 벌써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난 너무 서운해. 요번엔 꼭 우리 가족 모두모여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길 기도 했는데.. 아빠 단식투쟁 빨리 끝내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요. 그리고 또 아빠 감기 걸리지마.’

첫 아이는 그래도 철이 들어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노래를 직접 불러 녹음을 해 남편 메일로 보냈다. 그 노래소리를 듣던 남편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벌써 10일이 넘게 아빠의 얼굴을 집에서 못 본 아이들,
“아빤 언제 들어와, 크리스마스에는 아빠와 함께 할 수 있어?” 묻고 또 묻는다.
지금 상황 같으면 크리스마스도 온 가족이 농성장에 가서 맞아야 할 판이다.
아무것도 못 먹는 아빠와 함께 크리스마스 기념 단식농성을 온 가족이 함께 해야 할 해프닝은 과연 전 세계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번 단식농성은 예전과는 다르다.
70을 훨씬 넘기신 장기수어르신들부터 청년, 여성, 학생에 이르기까지 300명의 단식단이 함께 하고 있으며 연일 단식단 식구는 늘고 있다.
서울, 인천, 울산, 부산, 제주... 그들의 고향과 일터는 서로 다르지만 국가보안법철폐 단식농성단의 한 식구가 되어 한 몸같이 움직인다. 생일을 맞이 한 사람에게는 농성단의 마음을 모아 소금과 양말, 속옷이 전해진다. 권낙기 장기수 선생님께서는 생일자의 주소를 받아적으시고는 우리 탕제원에서 만든 십전대보탕을 보내주시기로 약속을 하셨다.
아침 7시 같이 일어나고 함께 투쟁하며 서로의 아픈 곳을 살피며 하루를 정리한다. 동지들이 함께 하는 단식은 그래서 외롭지 않다.
또한 단식단에 함께 하진 못하지만 하루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지지와 격려하는 마음으로 찾아오고 있다. 미안한 마음이라고 하지만 실은 그들이 있어 단식농성을 결의하고 올라왔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두고 온 아이들을 큰 마음으로 돌봐주리라 믿고, 두고 온 일들을 함께 책임져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가장 긴 단식은 28일 이었다.
2005년 1월 8일은 임시국회가 마감되는 날이다.
그날까지 따져보면 단식 시작일로부터 34일째 되는 날이다. 만일 그 때까지도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지 않는다면 남편은 그가 했던 단식투쟁의 역사상 가장 긴 단식을 하게 될 것 같다.
연내에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폐지되어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운 농성장에 있는 천명 단식농성단원들과 그들의 가족 수천 명이 만나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길 바란다.
 정영주 박소희씨는 삭발단식을 벌이고 있는 민주노동당인천연수지역위원장 김성진씨의 아내입니다.  x  2004/12/16
 청년 단식- 34일까지 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집에서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수 있길 빌어요!
 x  200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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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민농성단은 여의도 국회 국민은행앞 노상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