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네티즌 제안에 한토마 네티즌 50여명 익명 릴레이단식
단식투쟁은 결연한 행위다.
생명 유지활동에 필수적인 음식물 섭취를 중단하면서 무엇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또 사회를 향한 굳은 의지를 내보이는 것이다.
면벽한 구도자들이 묵언이나 고행으로 수행의 도구로 삼는 경우를 빼고는, ’단식투쟁’은 대부분 사회적 행동이다. 그래서 단식투쟁은 남모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선명한 구호를 붙여놓고 그 아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 낯익은 풍경이다.
기존의 단식투쟁과 전혀 다른, 색다른 단식투쟁이 일주일 넘게 진행중이다.
아주 특별한 단식의 이유들
단식을 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없다. 단식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이도 아무도 없다. 단식을 하고 있다고 언론에 알리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식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단식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사진도 없고, 이름도 없다. 다만 단식을 하고 있는 익명의 사람들이 여럿 있다.
靑竹, 제이웨이 가을향기, 왕건의후예, BlueSpace, 시민도시, 일무, 붉은노을, 노개민추, 종아니, 남자천사, 쪽지한장, 완행열차, 푯대를찾아서, 무소의뿔처럼, 무위, brian, 푸름이, 거친들판, 새누리, 이웃집로리, wkfgo …
지금 단식을 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50여명의 익명의 단식투쟁자들의 ’인터넷 아이디’들이다.
단식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정체가 불분명한 이번 단식릴레이에서 또하나 분명한 것은, 단식의 구호다.
“국가보안법 철폐”
“평생 무엇을 위해 밥을 굶어본 적은 없으나 … 기꺼이 동참하겠다”
<인터넷한겨레> 토론마당인 ’한토마’에서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며 50여명이, 얼굴과 이름을 알리지않은 채 릴레이 단식을 19일 현재, 9일째 이어가고 있다.
릴레이단식의 출발은 한토마 한 논객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참다운 세상,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소중한 일에 여러분의 동참을 호소합니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촉구하며 릴레이단식을 하자는 한 네티즌 요구였다.
‘靑竹’은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나라, 그것의 존재를 용인하며 마땅히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절대적 자유’를 헌납하고 저당잡히기를 자청하는 국민은 ‘민주’와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다”며 국보법 폐지 릴레이단식에 동참을 호소했다.
릴레이 단식은 국보법 폐지에 동의하는 네티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한토마>에 하루나 한끼 굶기를 원하는 날에 댓글을 달고 자발적으로 굶기를 실천하면 된다. 또 단식에 참여하는 결의와 끝난 뒤 소감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국보법 철폐에 대한 의지를 높여나가는 것도 굶는 것만큼 중요한 실천항목이다.
<한토마>에는 릴레이 단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사연과 감회로 봇물을 이루고 있다.
논객 ‘들꽃’은 “한토마 네티즌들의 끈끈한 정과 어울림이 만든 소박하지만 귀한 사이버 세상의 결실”이라며 “미약하게 시작한 한토마 국보악법폐지 네티즌 릴레이단식 열기가 사이버세상 곳곳에 스미게 되기를 갈망한다”고 말했다.
논객 ‘시민도시’는 “평생 무엇을 위해 밥을 굶어본 적은 없으나 국보법 폐지 릴레이 단식에는 기꺼이 동참하겠다”며 “누가 권유 한것도 아니고,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과의 약속이니 성실하게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단식릴레이는 12월12일 1차가 끝난다.
아래는 <인터넷한겨레>가 단식릴레이에 참석하고 있는 몇몇 논객들과 단식에 참여하게 된 사연을 들어보기 위해 실시한 이메일 인터뷰의 전문이다. ( ) 안은 단식 동참한 한토마 네티즌들의 아이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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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단식 참여자들과의 이메일 인터뷰
-왜 국보법이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필명 아직먼길) 국가보안법은 반인권적인 악법이다.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은 허구요, 허울이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유형, 무형의 상처와 왜곡을 치유하고 고칠 수 없다. 또 민족문제에 있어 열린 사고와 정신을 갖는 것, 비전을 가지고 창조적으로 대비하는 것을 막고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우리 국민과 우리 민족을 정신적 미성숙의 상태에 묶어 두는 것이다. 지금 보안법 사수세력과 그 추종 국민들의 의식속에 존재하는 보안 히스테리와 패닉현상은 거의 정신병적 수준이라고 본다.
=(필명 청죽) 개개인의 머릿속까지 국가의 권력으로 일일이 재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지 오웰의 형님이 통치하는 사회가 떠올라 오싹하다. 인간의 숭고하고도 기본적인 양심의 자유는 최대한 존중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진 공산주의 사상이 쉽게 발을 붙일 정도로 대한민국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회가 아니다. 거대해지고 다양화된 사회는 그 덩치에 걸맞는 다양한 사고에 대한 포용능력을 충분히 가진 건강한 사회라 확신한다.
=(필명 각골명심) 단적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오래 전에 이미 폐지했어야 마땅한 법이기에 그렇다. 하물며 냉전이 끝난 21세기에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치고 어느 나라가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파시즘적인 법을 형법의 상위법에 올려놓고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 떨고 있는가? 이러고도 어찌 우리가 민주주의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릴레이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먼길) 국가보안법 철폐의 카운트다운은 개혁을 표방한 열린우리당과 진보진영이 과반수를 차지한 지난 17대총선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11월이 접어들었는데도 열린우리당이 갈팡질팡 하는 등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국보법 철폐의 전망은 어둡다. 이에 국보법철폐를 바라는 진보개혁 네티즌의 연대가 절실했던 것이다. 진보개혁 네티즌들이 배수진을 치고 보안법 처리 원안대로 통과를 촉구해야 한다.
=(각골명심) 인터넷상에서나마 뜻맞는 몇몇 논객들과 힘을 합치고 대동단결해 우리시대가 반드시 해결하고 가야 할 국보법폐지를 비롯한 여러 개혁법안들이 제대로 입법화 될 수 있도록 정치권에 촉구하고 감시해야 한다. 단식은 국보법폐지에 임하는 우리들의 최소한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비록 개개인으로서는 한끼 혹은 하루를 굶는 것이 별 것 아니라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을 합치면 십시일반,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국보법폐지 단식릴레이는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가?
=(아직먼길) 처음에는 약간의 시행착오랄까 우왕좌왕하는 면이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해서 안된다는 위기의식과 결단으로 과감히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의견이 모아져 단식캘린더를 만들기 시작했다. 참가희망자는 청죽논객이 띄운 단식연대를 호소하는 글에 댓글 또는 꼬리말을 통해 참가의사를 밝히며 달력을 보고 직접 단식일을 정한다. 단식자는 단식에 임하며 자발적으로 보안법에 대한 폐지 촉구 의견을 한토마 보안법토론방이나 하니잘 등에 띄우는 것이 대체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단식릴레이 참석자 가운데 특이한 사례가 있나?
=(아직먼길) 단식에 참여하는 논객들은 20대 청년에서 80세 노인까지 제각각이다. 보안법 폐지라는 양심연대로 우리는 세대차가 성입견이며 허구라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청죽) 칠순이 넘은 논객 한 분은 대수술을 받은 몸으로 릴레이에 참여했다. 극구 만류했지만 워낙 단호해서 걱정이다. 물론 말리겠지만 그분의 의지는 정말 존경스럽다. 그밖에 각자의 단식이 하루를 넘지 않도록 적극 권장하는데도 불구하고 단식기간을 굳이 길게 잡으려 고집하는 논객도 있고 단식시간이 하루를 넘지 못하도록 한 규칙을 교묘히 피해(?) 날짜를 며칠 건너뛰어서 다시 참여하는 논객도 늘고 있다. 이밖에도 유럽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분이 운동을 보고 선뜻 참여의사를 보내는 등 머나먼 타국에서 보내는 고국사랑의 애틋함에 그저 가슴이 뭉클할 뿐이다.
-하루 동안 자발적으로 굶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청죽) 워낙 커피광이라 주위사람이 종이컵에 담긴 커핏잔을 들고 지나가면서 흩날린 커피향에 홀려 무의식적으로 자판기로 뛰어가려던 충동을 참아야 했다. 워낙 소식주의이고 평소 먹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라 별 애로사항은 없었다. 배가 약간 고프긴 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착 가라앉아 많은 생각을 한 하루였다. 국가보안법의 횡포 아래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고통과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거나 남아 있을 아픔들을 내가 하루를 단식한다고 공감할 수 있을까? 숙연한 마음이 들었던 하루였다.
=(아직먼길) 이 단식은 보안법이란 수치를 안고 있는 조국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작은 가난과 고난에의 초대’라고 생각했다. 사실 하루 굶는 것 자체에 그리 큰 의미를 둔 것은 아니다. 단식은 본래 종교적 전통을 가진 고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단식이 어떤 모양으로든 자기성찰의 계기가 되는 것은 사실이며 그러기에 이처럼 정신적 연대를 나누는데 가치있고 중요한 매개가 된다는 점을 체험했다. 촛불시위나 군중시위와 비교될 수 있는 정치적 의사표현임과 동시에 또 다른 지평의 비폭력 무저항의 의사표시임을 체험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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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레이단식 일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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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