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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농성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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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농성 둘째날(11월3일) "한다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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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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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둘째날은 아침 6시 기상과 함께 시작이 되었습니다.
기상과 함께 간단한 체조로 언 몸을 풀고, 민주노동당 당사를 비롯해 주변 건물로 산개해 세면을 하였습니다.
우리들 투쟁을 지지해주시는 여의도 한 음식점 아저씨의 후원 아래 싼값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여의도로 출근을 하는 시민들을 만나기 위해 여의도 역으로 선전전을 나갔습니다.
8시 20분부터 30분간 여의도역에 내려서 총총히 출근을 하는 시민분들에게 우리들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우리들이 왜 이곳 여의도 길거리에서 자고, 이른 아침부터 선전전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였습니다.
선전전을 마치고 농성장에 돌아오니 오늘 하루 농성에 참여하고자 하는 각 단체 회원들과 어르신들이 농성장에 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각 단체별로 오신 회원분들과 인사도 하고,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 후에 간단한 출정식과 함께 본격적인 둘째날 농성을 시작하였습니다.
둘째날 본격적인 농성의 첫 활동은 아침 10시부터 진행된 국회 도보순례였습니다.
국민들의 열망으로 만들어진 17대 국회가 국민들이 하라는 국가보안법은 폐지않고, 자기네들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국회를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로 가득 채우고자 기획한 국회도보순례였지만, 그동안 국회로 가고자 할 때마다 경찰들에게 막혀 번번히 실패한 우리들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국회 도보순례가 성사될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기조를 정했습니다. "무조건 국회를 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을 도보순례의 길을 만든다" 였습니다.
우리의 예상처럼 도보순례를 시작하고 열걸음도 가지 않아서 경찰이 막아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물러설 우리들이 아니죠. 이 길이 아니면 저 길로, 저길이 아니면 또 다른 길로 가기 위해 옆 골목을 통해 국회를 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웬일인지 옆 골목은 막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며, 국회 담벼락에 도착한 순간 게으른 경찰들이 또 다시 막아나섭니다. 경찰들이 막아나선 벽을 한 명씩 통과하기로 하였습니다. 한 명씩, 한명씩 이렇게 우리들은 길게 늘어서 인간띠를 형성하며 국회를 포위한채 도보순례를 진행하였습니다.
도분순례를 진행하고 돌아오니 농성장에 영등포구청에서 철거 경고장을 붙이고 돌아갔습니다. 치사한 놈들입니다. 아무도 없을 때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와서 경고장을 붙이고 가다니 말입니다.
그래 철거를 하러 올테면 오라..우리들은 온 몸으로 막겠다는 결심을 다지고 다음 실천을 나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오후 실천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농성장 앞 쪽에서는 여성단체 회원분 50명이 흥겹게 '여성행동의 날'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노래와 춤, 랩이 어울러진 국가보안법 폐지는 즐거운 한판 마당이 되었습니다.
여성행동의 날을 마치고 우리들은 비상대기 상태에 돌입하였습니다. 영등포구청 철거반과 경찰들이 천막 철거를 위해 농성장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곳에는 국민농성단 천막 세 동과 함께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전교조 선생님들의 천막과 장애이동권보장을 위한 장애인들의 천막 이렇게 다섯동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후 2시가 되어서 경찰들이 미친듯이 난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맨 몸으로 천막앞에 누워 있는 여성들과 민가협 어머님들, 단체 어르신들, 그리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밟고 넘어서며 폭력으로 천막으로 부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놈들에게는 인륜도, 인권도 없는 놈들인가 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당하기만 할 우리들이 아닙니다. 철거를 하고 돌아가려는 버스를 압류했습니다. 경찰버스를 맨몸으로 둘러싼 채 책임자의 사과와 원상복구를 요구하며 연좌를 하였습니다. 호시탐탐 우리들을 인도로 몰아내려는 경찰들을 몸으로 막으며 연좌를 계속하였습니다.
질긴놈이 이깁니다. 이길 때까지 버티는 놈이 이기는 법인가 봅니다. 결국 저녁 시간 농성장 침탈 소식을 듣고 찾아온 200여명의 시민분들과 침탈 규탄 촛불집회를 진행하였습니다.
원상복구 될때까지 물러서지 않는 우리들의 의지에 경찰들이 물러납니다. 결국 밤 시간이 되어 새로운 우리들의 보금자리가 마련이 되었습니다. 새집증후군을 걱정할 정도의 깨긋한 천막 다섯 동이 그대로 들어섰습니다.
농성 둘째날 도보순례도, 농성장 사수도 한다면 했습니다.
우리 농성단은 한번 뱉은 말은 끝까지 책임지는 농성단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국민농성 둘째날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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