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이 죽느냐, 내가 죽느냐! "


김경훈    사랑하는 당신에게 함께 투쟁하며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2004/12/20
사랑하는 당신에게 함께 투쟁하며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함께 단식농성을 하면서 당신에게 글을 남기려니 조금은 쑥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나보다 먼저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얼마 전에는 힘겨워하는 모습도 보여서 당신을 격려하며, 또 스스로에게도 격려하는 심정으로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우리가 국보철 무기한 단식농성을 결의한게 12월 4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여성회 지부장으로 나는 자주통일 실천단 간부로 각자 단식을 결심하고 촛불집회에서 만나 서로 "저녁에 조용히 얘기할 게 있다며 일찍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날 모처럼 일찍 무릎을 마주한 우리는 애들을 재워놓고 서로 "내가 단식농성투쟁을 하겠으니 당신은 애들을 보며 지역을 조직하라"며 고집을 세웠습니다. 당신은 여성회 지역 지부장의 지위를 앞세워 당신이 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고, 나는 노동운동의 특성을 앞세워 누군가 먼저 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사다리를 타느니, 가위 바위 보를 하느니 하며 결론을 못내리다가 결국 둘다 올라가는 것으로 되었지요.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 집으로 보내놓고 당신은 아이들과 헤어질 생각에, 또 두 아이를 나뉘어서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알고나서 지금까지 그토록 슬픈표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흐느끼며 눈물만 방울져 떨어지는 당신을 보고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만 어깨를 다독이는 것 뿐이었습니다.
당신과 내가 12월 5일 민주노동당 총력집중집회에 함께 가서 당신은 남고 나는 내려와야 했습니다. 12월 8일까지는 정리해야할 일정이 있었으니까요. 곧 올라가겠다며 당신과 헤어지고 다른 일정하나를 소화하고 야간고속을 타고 울산으로 내려가며, 오직 하나의 생각에만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우리 가족을 뿔뿔히 흩어놓는구나. 정말 이건 판가리 싸움이다. 놈들도 사생결단할 것이다.서로가 죽기를 각오해야 할 싸움이다. 감상적이지 말자."

다음 날 급하게 노동단위 일꾼들을 만나보며 단식농성단을 조직하고 이후투쟁에 대해 의논하고 아이들을 찾아안고는 집으로 갔습니다. 집은 참 조용했습니다. 당신이 미처 치우지 못하고 간 것들을 정리하고 오랜만에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과 누웠습니다.
명환이가 무심히 "아빠, 아빠 엄마 서울에 투쟁하러 가지? 안가면 국가보안법 땜에 아빠 엄마 더 오랬동안 못보니까 가야되지?" 하며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데 목이 자꾸만 메어왔습니다. 알고보니 당신이 애들에게 아빠 엄마가 국가보안법 때문에 한달동안 투쟁하러 가야하는데, 지금 한달동안 투쟁하지 않으면 나중에 몇년을 못볼지도 모른다며 설득해놓았더군요.

12월 7일 국보철 투쟁을 위한 노동일꾼 긴급회의에서 총연맹 방침 확정(12월 8일 예정)즉시 5명의 단식농성단을 서울로 보낸다고 결정하였지만,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결정이 금요일로 보류되었습니다.
참, 허탈했지만 평소 건강을 제대로 못챙긴 벌을 받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지들의 사랑이 가슴이 먹먹해 지기도 했습니다.

그날 당신은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고 다만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지요. 올라와서 보니 몸살까지 겹쳐서 그렇게 힘들어 했더군요.

한 주내내 애들 챙기고 일꾼들 만나고 회의 참석하고 돌아다니다 보니 그동안 참 당신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글을 빌어 당신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한 걸 사과합니다.

그렇게 한주가 지나고 12월 11일 서울 총력투쟁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참 초췌해져 있었습니다만 초반의 힘들어 했던 목소리와는 달리 당당하고 씩씩해져 있었습니다. '역시 내마누라다. 이혜경이가 어디 가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요일날 올라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는 다시 울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월요일 현대자동차 노조를 방문하고 나서, 한 동지가 "내일 민주노총 울산본부 대의원 대회 마치고 같이 올라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 동지가 대의원 대회에서 투쟁을 호소하고 가자는 취지였습니다. 참 좋은 생각이다 싶어, 대의원 대회를 마치고 14일 밤늦게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14일, 오전내내 아이들 짐이며 내짐을 챙기고 집안을 치웠습니다. 애들 옷가지며 내의며, 학용품과 책들을 챙기다 보니 슬픔과 분노가 함께 올라왔습니다. 한나라당 - 이 수구꼴통 놈들이 눈앞에 있으면 당장이라도 박살내버릴 것처럼 그렇게 화가 났습니다. '죽일놈들, 쓰레기 같은 놈들' 하며 가방을 쌌던 것 같습니다.
명진이 방과후 교실에 명진이와 가방을 선생님께 함께 맡기며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더 있다가는 애앞에서 부끄러운 모슬을 보이겠다 싶어, 잘 부탁드린다는 말만 하고 급하게 나왔습니다. 명진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눈물이 나서 그냥 나왔습니다. 그리고 명진에게 전화를 해서 몇가지 주의를 주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흐르는지... 당신이 단식상경농성을 결심한 다음 날 아침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명환이는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명환이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 일부러 명환이에게는 가지 않았습니다.

새벽에 도착한 서울은 참 추웠습니다. 여의도에 도착하니 당신이 잠들어 있을 단식농성단 천막이 보였습니다. 많은 동지들이 곤히 잠에 빠져있더군요. 7시 전원 기상에 맞춰 당신을 만나러 갔습니다. 9일차 단식을 진행중인 당신은 많이 야위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오히려 내 걱정을 했습니다. "몸도 좋지 않은 당신이 잘 견딜 수 있겠어?" 하며 그 큰 눈망울에 걱정을 가득 담아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나는 그때 당신이 나의 아내로서 그리고 동지로서 얼마나 귀중한 사람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당신이 있어 나의 단식은 힘들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의 동지이기 때문이지요. 조금은 특별한 동지 말입니다. 물론 다른 동지들이 함께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지금은 어느듯 단식 6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첨에는 날짜를 붙이는게 쑥스러워 3일차까지는 일부러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정말 신화와 기적을 창조해 냈습니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국보철의 벽이 부수어 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천정배 대표의 연내처리 유보 기자회견 이후 급속히 퍼져가던 패배주의가 단식단의 결사항전으로 모든 것이 뒤엎어졌습니다. 오죽하면 놀란 한나라당이 이철우 사건을 만들었겠습니까. 물론 그게 더 활활 타오르는 우리 투쟁의 승리의 불길에 기름을 얹어주기도 했습니다만.
죽기를 각오한 우리 결사단식단의 투쟁은 날이 갈수록 승세를 확정지어 갔습니다. 열린우리당은 국민단식단이 단식을 벌인지 3일차에 중앙위원회 결정으로 연내 강해을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군부독재 시절에서나 있을 법한 한나라당의 간첩사건은 각계각층의 분노를 폭발시켜 이제 국보철 투쟁이 범국민적 투쟁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2월 18일 광화문은 또 다시 촛불의 바다였습니다. 당신과 나는 그 촛불의 바다 가운데서 작은 촛불로 역사앞에 당당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우리는 한껏 촛불을 위로 올리고 "국가보안법 연내폐지, 한나라당 해체"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날, 울산에서 200여명의 동지들이 올라왔었지요.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안다는 듯 손을 잡으며, 안으며, 볼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눈시울을 붉혔지요.
울산의 동지들은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들을 생각하며 지역에서 집회를 조직하고, 상경을 조직하면서 얼마나 애태웠을까요. 행여 단식투쟁을 진행하는 동지들이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얼마나 심장을 태우며 설득하고 조직했을까요.
우리는 정말 동지였습니다. 국보철 투쟁은 모든 동지를 참된 동지로 하나되게 하는 위대한 투쟁으로 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은 15일차 나는 6일차 단식입니다. 임시국회가 1월 8일까지 연장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36일차가 되고 나는 25일차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단식투쟁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죽음을 각오한 투쟁으로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무덤으로 보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여보! 우리, 차라리 우리가 죽더라도 국가보안법 만은 반드시 연내에 폐지시킵시다. 우리가 없어도 동지들이 우리 아이를 돌보지 않겠습니까?
서울로 올라오기전 처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부랑 언니는 정말 모질어요. 어떻게 애들을 두고 그렇게 갈 수 있어요?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지만"
처제에게 이렇게 말한 거 같습니다. "처제, 형부랑 언니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정의를 보여주는 거야.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거든. 형부랑 언니가 올바르게 살아가면 아이들도 따라 배울거라고 믿어. 우리가 애들에게 줄 수 있는 건 그것이 전부이고, 또 그게 가장 귀중한 거라고 생각해"

여보! 우리가 모진 걸까요? 아니면 세월이 모진 걸까요? 
어쨌든 우리가 이렇게 함께 역사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투쟁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마음을 나누며 끝까지 기운차게 싸워갑시다. 당신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사랑합니다.

단식 6일차에 사이버 투쟁을 하며 당신에게
 푸르른날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며 농성하던 때가 ..14-5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현존하는 악법을 보면.. 서글퍼지기까지 하군요...지금 함께 하진 못하지만 가슴으로 우러나오는 연대감으로 뜨거운 지지를 보냅니다. 힘내십시오!!!  x  2004/12/22
     


57   단식단 여러분 존경합니다   조민 2004/12/28 1003
56   깨끗한 물에 물고기가 못산다는 것은!   正道 2004/12/22 1039
55   날씨가 너무 춥습니다.  [1] 인천물푸레 2004/12/22 983
54   칼바람을 맞서 국보법의 칼자루를 끝장내자!!  [1] 인천턱선생 2004/12/22 803
53   여의도의 새바람  [1] 인천에서 2004/12/21 844
52   친구들아 힘내라!!  [1] 눈빛 2004/12/21 808
51   국가보안법을 반드시 끝장내자....  [1] 인천교사 2004/12/21 796
50   눈물이 납니다...   인천교사2 2004/12/21 1097
49   결사 단식하여 죽으십시요 그리하면 보안법이 님을 살릴것입니다.   이영화 2004/12/21 796
48   투쟁..   인천에서 2004/12/21 1132
47   내일 뵙겠습니다.   인천교사 2004/12/21 1124
46   죄송합니다..   주연 2004/12/21 1044
45   예수님도 바라신다~국가보안법 끝장내자!!!   가톨릭청년연대 연탄 2004/12/21 812
44   당연히 국가보안법이 죽어야죠...   철폐국보법 2004/12/21 1122
43   천금을 주어도 살수 없는 사랑하는 동지들!!   류경민 2004/12/20 1260
42   날씨가 너무 춥습니다   인천친구 2004/12/20 819
  사랑하는 당신에게 함께 투쟁하며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1] 김경훈 2004/12/20 2871
40   부평을 여성위원장님 ^^ 아자자자!!   부평이만들고싶은세상 2004/12/20 820
39   모두들 힘내세요~~   인천지역 2004/12/20 1014
38   끝까지 함께 합니다.   영순 2004/12/20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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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민농성단은 여의도 국회 국민은행앞 노상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