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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펌]“보안법 없는 새해를” 1천인 ‘동토의 단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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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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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법 없는 새해를” 1천인 ‘동토의 단식’
△ 22일 새벽 서울 여의도 여의도공원 국가보안법 철폐 천막농성장에서 단식농성에 참여한 시민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정우 기자 woo@hani.co.kr
국회 앞 길바닥 농성…밤엔 촛불들고 광화문으로
18명 입원…“칼바람 보다 정치권 야합이 더 걱정”
“빨리, 빨리! 누구 운전할 수 있고 병원 가는 길 아는 사람 없어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술렁거렸다. 찬바람을 맞으며 17일 동안 단식을 계속해 오던 황아무개(27·여)씨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기 때문이다. 하혈을 계속하던 황씨를 살펴보던 인천지역 참의료실천단은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황씨는 급히 녹색병원으로 옮겨졌다.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장에서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 6일부터 시작한 1차 단식농성단 중 18명이 이미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1000명 단식’이라는 사상 유례 없는 대규모 단식단이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내걸고 국회 앞에서 17일째 처절한 길바닥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얼어붙은 아스팔트 위에 스티로폼을 깔아놓고 동짓달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단식단의 눈에는 추위와 배고픔에도 굴하지 않는 결의가 가득했다. 영하 7도까지 떨어진 날씨 탓에 한데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추위와 배고픔보다, 4자 회담 뒤 여야가 야합해 보안법 연내 폐지가 물건너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단식단은 비닐천막에서 매일 아침 7시께 일어나 항의방문 등 활동을 벌인 뒤 오전 10~12시, 오후 2~4시에는 국회 앞 길바닥에서 시위를 한다. 또 매일 저녁 7시에는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천에서 왔다는 단식 16일째의 최승원(29)씨는 “어차피 우리 단식은 정치권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라며 “정치권에서 어떻게 야합을 하든 우리는 보안법이 폐지될 때까지 단식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단식농성단에 참여한 사람들은 직접 보안법으로 감옥에 갔다온 사람부터 가족이 보안법 피해자인 사람, 일반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아래로는 스무살의 앳된 대학생부터 쉰살이 넘는 시민활동가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았다. 보안법폐지 국민연대 쪽은 단식에 동참하겠다는 고령자들이 많지만 추운 날씨 탓에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식 14일째인 정대일(37)씨는 1997년과 2002년 두차례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모두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첫번째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간부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두번째는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일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정씨는 “3년 내내 ‘독방’ 생활을 하면서 뭐든지 극단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등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졌으며,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며 “단식이 너무 힘들지만 앞으로는 나 같은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견뎌내고 있다”고 말했다.
보안법 연내 폐지를 쟁취하겠다는 일념으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경기·인천·대구·경북·경남·울산·제주·충남 등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절반을 넘었다.
멀리 울산에서 올라온 김기호(31)씨는 결혼한 지 한달밖에 안 된 새신랑이다. 지난달 20일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 뒤 지난 6일 아내 조성희(29)씨와 함께 단식에 참가했다. 이들 역시 보안법의 피해자다. 김씨는 98년 한총련 대의원이란 이유로 수배받기 시작해 6년 동안이나 쫓기는 신세로 살았다. 조씨는 단식 8일째 쓰러져 울산으로 내려갔고 김씨만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김씨는 “우리 부부의 삶에서 보안법이라는 것이 너무나 지긋지긋해 단식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꼭 ‘보안법 없는 새해’를 맞고 싶어 힘들지만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 7살난 아들이 있는 주부 장수경(37)씨는 “올해가 아니면 보안법 폐지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단식에 동참했다”며 “아이가 엄마 손길이 제일 필요할 때인데 이렇게 나와 마음이 아프다”고 눈물을 훔쳤다.
농성단의 건강을 돌보고 있는 인천지역 참의료실천단의 김진선씨는 “나이드신 어르신들이나 생리 중인 여성들은 몸을 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하지만 단식을 그만 두라고 할까봐 진료를 거부하는 사람들까지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한 뒤 밤 9시가 되어서야 농성단은 천막으로 돌아왔다. 천막에는 열풍기와 난로 두 개가 있으나 한기를 밀어내지는 못했다. 농성단은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회의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면서 고단한 하루를 마감했다. 이따금씩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들과 통화를 하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도 들렸다. 2004년 겨울, 여의도 농성장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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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단 농성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