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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현 소설가]망령’들의 외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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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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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기고] ‘망령’들의 외침
△ 김영현 소설가
마침내 그들이 왔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려지던 일이었다. 1500여명의 사회 각계 원로들이 일제히 단합하여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 면면을 살펴보자면 일국의 국무총리를 지낸 인사를 포함, 전직 국회의장, 국회의원, 장관을 비롯해 고위관료와 장군을 지낸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만만한 얼굴들이 아니다. 한때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부의 핵을 이루며 우리 사회를 들었다 놓았다 하던 사람들이 아닌가.
보수인사 총력 ‘선전포고’
그런 만큼 그들의 목소리 역시 만만치가 않다. 준엄하고도 살벌하기 그지없다. “건국 및 호국세력이 피땀으로 세운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정통성을 잃고 위기에 빠졌다”며 6.15 남북 공동선언은 파기되어야 하고 ‘진보’의 가면을 쓴 ‘친북·좌경·용공 세력’은 척결되어야 한다고 한다. 전교조에 대해 일격을 가하고, 386세대가 대거 진출한 국회와 ‘편파가 극에 달한’ 방송매체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나아가 국보법과 관련해 대통령의 탄핵까지 들고 나섰다. 전방위적이고 총력적인 선전포고에 다름 아니다.
생각하면 그들이 돌아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길고 길었던 그놈의 민주화의 과정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분리수거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던 그들이 아닌가. 용공분자로 찍혀 수배를 받고, 최루탄에 쫓겨다니던 인간들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들이 오랫동안 누렸던 바로 그 자리, 국가권력의 중심에 앉아 있으니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 틀림없을 터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혈맹인 미국을 배신하고 철천지 원수인 북한과 가까워지려 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 역시 어쩔 수가 없을 터이다.
하지만 그들의 분노 속에서 나는 말할 수 없는 파렴치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역겹기까지 하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사진 속의 얼굴 중에는 지난 날 우리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저 독재정권의 하수인들도 보이고, 부정축재로 걸려들어 대문짝만하게 신문을 장식했던 낯익은 면면도 보이거니와 민주화 주장을 좌경으로 매도하며 협박과 수배와 고문을 일삼았던 최고 수사기관의 책임자 얼굴도 보인다. 그들이 이제 ‘사회 각계 원로’로 둔갑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애국세력’을 외치며 나타난 것이다. 도무지 헷갈리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이미 청산된 줄 알았던 망령들이 되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역사는 거꾸로 흐르지 않아
나는 대학시절 폭압적인 유신 치하의 영점 칠평 어두운 감옥에서 청춘의 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고 전두환 정권 하에서는 보안대로 끌려가 짐승과 같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들이 지난 시절 무슨 일들을 저질렀는지 몸으로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아니,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의 그 누구도 지난 시절에 대해 사과하거나 통회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분노는 그들의 자유다. 그들이 어떤 주장을 하건 그 역시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역사는 결코 거꾸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망령은 그저 망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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