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장
송소연 / 민가협
갑자기 눈물이 흐릅니다.
국회의원 이전에 전직 양심수 이철우, 그리고 그의 아내 곽윤식, 그의 어린 딸 일완이. 그리고 아들을 감옥에 보낸뒤, 충격으로 쓰러져 다시는 못돌아올 곳으로 가버린 남편의 죽음에도, 자식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안기부 앞을 눈물로 지켜냈던 그의 어머니.
선명하게 떠오르는 사진 한장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와 그의 어린 딸.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이 된 일완이는 그때 나이 세살이었던가요.
안기부, 그 22일동안 면회한번 되지 않았던 그 남산 안기부 - 주자 파출소 앞(안기부 근처에도 못가고 안기부 지키던 주차파출소가 있었거든요)에서 울부짖던 할머니 품에 안겨 우는 모양으로 어른들을 말꼼히 바라보던 어린 일완이 사진입니다. 나도 그땐 감옥에 있었지요. 감옥에서 풀려나고 민가협을 찾았던 날, 우연히 펼쳐본 <민주가족>이었던가, 그 사진을 보고 그 어린 아이의 아버지를 생각 했지요.
법원에서는 9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졌던 해방이후 최대 간첩사건이라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대해 그 명칭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민족해방애국전선(민애전)으로 판결하였고, 또한 이철우를 기소했던 이른바 "국가기밀 방조"가 기껏 학생운동 관련 서적 40여권의 제목과 저자, 출판사를 서점에서 보고 적었다는 그 문서였는데, 법원은 그것 마저 간첩죄가 아닌, 목적수행을 용이하게 했다는 식으로 판결을 내렸지요.
이철우에 대한 기억은 자세히는 없지만, 한가지는 기억합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사건으로 운명하시자, 이철우가 했던 말입니다. "아버지 산소에 초막짓고 산다는 심정으로 이 감옥을 견디겠습니다"
그리고 수년뒤 이철우가 석방되었습니다. 그가 석방되던날, 또렷하게 말하던 일완이를 또 잊을 수 없습니다. 민가협 할머니들 감사합니다!
일완이는 지가 다니던 한탄강에 있던 초등학교가 폐교될 위기에 이르자 어른들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해서, 그 학교를 지켜냈던 아주 총명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이었습니다. 민가협 목요집회가 500회를 맞던 날이었어요. 아주 커버린 일완이는 "오늘 아버지가 열린? 痢??포천 연천지구당 개소식을 하는 날입니다만, 할머니들께 감사드리기 위해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세살 난 일완이가 이렇게 커서 아빠와 엄마랑 행복하게 다시 살게 된것, 할머니들 덕분입니다."
그 말에 어머니들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그 안기부 앞에서 자식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대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채, 날마다 경찰차에 실려 여기 저기 버려졌으면서도 다시 안기부 앞에 모여 싸우고 또 싸운 그들의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끔찍했던 그 시절도 이렇게 웃으면서, 또는 즐겁게 추억할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얼마뒤 이철우가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나는 그때도 그 사진을 떠올렸지요.
저는 오늘 17대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철우가 당했을 그 고통보다, 집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를 그의 어머니,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딸 일완이가 떠올라 좀체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어디 이철우 가족 뿐일까요. 지금 이 순간, 절망과 분노에 떨고 있을 수많은 간첩 사건 관련자들, 그의 그의 가족들, 그리고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의 얼굴들이 떠올라, 그 황망함을 견딜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은, 피해자가 아닌, '과거'를 천형으로 매달고 살아야 합니까.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고통을 다시금 떠올리며, 남모르는 속울음을 삼켜야 할까요.
한 사람의 인생역정이 단 한마디로 규정 당한채, 인생이 난도질 당하는 이 끔찍한 현실을 얼마나 용인하고 살아야 하나요...
그의 딸 일완이가 다시는 눈물 흘리지 않기를, 그의 어머니가 다시는 피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며,
아마도 잠못 이룰 그의 연천 집과 "또 다른 이철우들"을 생각하며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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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단 농성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