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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    [릴레이기고]⑤내가 만난 '간첩' 강순정 할아버지-박주민- 200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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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추운 겨울이 시작될 무렵 '강순정'이라는 사람이 간첩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둘러 접견을 가서 만나게 된 사람은 이제 나이 80을 바라보는 깡마른 체구의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또 왜 간첩이라는 혐의를 받게 된 것일까?

자리에 마주앉자 아무런 사전 설명없이 접견을 가라고 한 선배 변호사가 원망스러웠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으면서 머리 속으로는 간첩이라는 무거운 죄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판사들의 굳은 얼굴들만 떠올랐다. 이제 어떡하지?

나에게도 간첩죄라는 것은 무겁고, 어두운, 아니 차라리 무서운 범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렸을 때는 TV드라마에서 나오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간첩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했다면, 대학 이후에는 간첩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그로 인한 심대한 피해를 접하고 두려워하게 됐다. 그렇기에 강순정씨를 처음 접한 순간 바로 어쩔 줄 몰라 당황해 버린 것이다.

이걸로 간첩? 구속이 될까?... 결국 무죄

그런데 이후 검찰의 구속영장청구서를 보고서 오히려 난 안심이 되었다.
강순정씨를 수식하는 무시무시한 말들이 계속 나열되어 있었지만, 왠지 그것뿐이고, 위험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니 이게 간첩?'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할 뿐이었다. 과연 구속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2007년 1월 9일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정치권 및 재야 동향 등 국가기밀을 북한에 보고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강순정(76)씨를 구속 기소했다.

또 많은 언론들은 이 사실을 두고 통일운동을 빙자하여 간첩활동을 해온 강순정씨가 드디어 간첩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는 식의 기사를 실었고, 계속된 간첩사건에 많은 국민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럼 이 사건의 재판결과는 과연 어떠했을까? 언론이나 검찰의 호들갑과는 달리 간첩혐의에 대해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처음 내가 구속영장청구서를 보고 안심했던 부분이 그대로 재판에서도 인정된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한 마디로 변화된 상황이 가지는 힘이다.

80순을 바라보는 강순정씨의 간첩혐의는?

검찰은 강순정씨가 북한에 5차례에 걸쳐 총 16종의 국가기밀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국가기밀이라고 주장한 것들 중에 중요한 것은 아래와 같다.

▲ 통일로 가는 길 제25호, 제26호
▲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이 작성한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과 주한 미군의 철수'
▲ 미군 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 양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만든 사진 105매
▲ '남북대결 조장하고 국민허리 휘게 하는 2003년도 국방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을 촉구한다'는 제하의 유인물
▲ 제6차 범민족대회 비디오테이프
▲ 보안관찰대상자 인권침해실태
▲ 사월혁명회보 제68호
▲ <통일의 길에서> 제12호
▲ 한총련 관련 정치수배해제 입장발표 기자회견 자료집

먼저 위 자료 중 '통일로 가는 길' '통일의 길에서', '사월혁명회보' 등은 모두 단체들의 회지로서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정보다. 그리고 사망한 여중생의 사진들은 오랜 기간 그리고 많은 장소에서 전시되었었고, 언론에도 실렸던 사진들이었다.

심지어 '보안관찰대상자 인권침해실태'라는 문건은 국가인권위에서 민가협 등에 의뢰하여 제작한 것으로 국가인권위에 의하여 많은 공공기관에 배포됐으며, 지금도 국가인권위원회의 홈페이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리고 유인물이나 기자회견자료집의 경우 역시 유인물의 배포나 기자회견과 동시에 인터넷에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였다. 과연 간첩죄가 인정될 만한 자료들인가?

인터넷 시대와 국가기밀

법원은 어떤 사실이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로 인정되려면 그것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어야 하고(비공지성), 그 내용이 누설될 경우 국가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기밀로 보호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실질비성)고 보아왔다. 따라서 위 자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라 하더라도 현재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않다면 국가기밀로 인정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현실 상황은 많이 변해 있었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80% 이상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정보화된 나라가 된 것이다. 인터넷에서의 정보검색은 이제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되었으며 많은 단체와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알리고자 한다.

이렇게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이 사람에 의한 직접수집에 한정된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인터넷을 통하여 신문이나 잡지 등이 전세계로 배포되고 있고, 공공기관을 비롯한 국내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단체들이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자신들의 활동내역을 알리고 있는 상황이므로 공지이든, 비공지이든 누구든지 원하면 자격이나 신분의 제한없이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자료와 사실이라면 그러한 사실은 국가기밀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비공지성의 개념이 현재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가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없다' 또는 적어도 '비밀의 주체가 그것을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가 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포털사이트나 정보검색사이트의 발달로 정보의 수집이 점점 쉬워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평범한 지식검색이라는 일상생활이 간첩(정보의 수집 및 탐지)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런 변화된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인정없이 국가보안법폐지나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사람이 뭔가 정보를 북한에 전달했다는 사정만으로 간첩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20~30년 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반면에 과거와 달리 위와 같은 자료를 국가기밀이 아니라고 인정한 법원의 태도는 변화된 사회상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변화된, 그리고 변화될 상황과 국가보안법

남과 북의 정상이 벌써 2번이나 만났다. 이것 역시 과거와 많이 달라진 상황이다.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10개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그 대부분이 민족의 공동번영을 위한 것이었다. 앞으로 상황은 더 달라질 것이다.

강순정씨 사건에서 법원은 "북한 자체의 변화와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북한이 가지는 위험적 요소가 과거에 비하여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위협이 되는 측면이 있기에 동반자라는 성격과 아울러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남과 북 사이에 평화가 좀 더 정착되어 간다면, 그로 인해 북한의 위험적 요소가 좀 더 줄어든다면 국가보안법은 어떻게 될까? 아니, 남과 북 사이에 교류나 협력이 더 잘 이루어지고 평화가 정착되려면 먼저 국가보안법을 어떻게 해야 할까?

덧붙이는 글 | 박주민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7.10.08 16:3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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