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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    [릴레이기고]①21세기 대한민국 법률에 담긴 리승만의 국가관-임헌영- 200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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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리타분한 소설 한 연을 인용하고 싶다.

"불원한 장래에 사어(死語)사전이 편찬된다고 하면 '빨갱이'라는 말이 당연히 거기에 오를 것이요, 그 주석엔 가로되 '1940년대의 남부 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찬,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孔孟敎人),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단지 추잡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밖에도 000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채만식 소설 <도야지>, 1948년)

채만식이 빠트린 세력이 있다. 바로 양심적인 항일독립투사들이다.

반대로 "빨갱이 때려잡는 게 곧 애국"이라며 외세와 밀착, 분단, 독재의 복마전을 쌓았던 세력의 주류는 친일파였거나 그 후예들로 이내 친미파로 변신했다. 당연히 '맹방' 미국이나 일본을 비난하는 것도 빨갱이다.
남한은 일본이 남긴 치안유지법을 개보수해 '국가보안법'으로 재무장, 친일파 청산이나 민주주의 주창자, 통일과 반전 평화주의, 침략전쟁 반대, 미국 비판, 대재벌 비판, 인권과 노동자·농민의 권익, 여성해방, 실직자 구제, 유아와 노인복지,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 제도 등을 비롯한 각종 사회복지 주창자도 '빨갱이'로 몰았다. 어째서 우리 사회는 유럽형 사회복지 제도를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그런 제도를 한국에서 실시하자고 주장하면 빨갱이로 둔갑시켜 버릴까.
이 법은 독재체제 유지를 위한 도깨비방망이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60년 전 채만식이 주장했던 000가 오늘날은 누구인가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보안법 제정 당시부터 "국가보안법은 악법" 외침

보안법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난산이어서 국가를 '보안'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법 때문에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했다. 이 법은 1948년 12월 1일 법률 제10호로 전문 6조와 부칙을 제정, 49년 12월 19일과 50년 4월 21일의 개정에서 전문 2장과 부칙으로 개정, 시행 기일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으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시행령을 제정 못해 서류창고 신세를 져야만 했었다.
6·25와 같은 대혼란 속에서도 이 법은 없었기에 기실 이 무렵부터 징역을 살았던 이른바 '장기수들'은 국방경비법 등 만으로 긴 독방 신세를 져야만 했었다. 말을 바꾸면 국가보안법 유무가 민족적 혼란을 다스리는 데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는 뜻이다.
정작 000가 국가보안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한 것은 1958년 12월이었다. 세칭 24파동(12월 24일의 약자)으로, 국회는 경호권을 발동해 무술경관으로 하여금 야당의원들을 폭력으로 몰아낸 후 여당 단독으로 '신(新)'자를 앞에 붙인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야당(민주당)은 즉각 "국가보안법은 이와 같이 악법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 요지엔 이런 구절도 있다.

"…공산분자를 더 잡을 수 있는 이점보다도 언론 자유를 말살하고 야당을 질식시키며 일반 국민의 공사 생활을 위협할 해점(害點)이 심대하다. …이 법안은 '국가 기밀'과 '정보'의 개념을 군사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분야에까지 확대하여 국민 공사 생활의 거의 전 지역을 처벌 대상으로 하였는 바 아무리 강력전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와 '문화'의 영역까지를 국가기밀이라 하여 엄벌해서는 안 될 것이며 정치와 경제도 군사에 직결되는 특수 기밀만 보호하면 족한 것이고 그 한계는 법원 판례가 적정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이 성명은 "자유당은 자기들만이 반공인이고 여타는 모두가 용공자인 것 같은 망상과 형벌 가능의 착각을 버려야"한다고 충고한다.
많은 인재들이 이 법으로 생명을 빼앗겼거나 인생을 망쳤으며 청춘을 잃었다.
그로부터 어언 50년이 흘러,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한글맞춤법도 제대로 몰랐던 '국부 리승만 대통령'이 끔찍이도 배격했던 '평화통일'이 버젓이 헌법에 등장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헌법에 위배되는 듯 보인다.

이런 헌법 조항이 얄타 냉전체제의 보안법과 어떻게 사이좋게 같은 법전에 수록될 수 있는지 그 조화에 탄복하다가도 이내 둘 중 하나는 분명 산 송장이란 생각이 굳어진다.
통일 독일의 바탕을 만든 빌리 브란트가 1969년 10월 28일 연방의회에서 "동서독 간의 인적 및 물적 거래가 장기간 악화되도록 만들었던 원인은 동독 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완강한 보수정책을 밀고 나갔던 서독의 기민당 정부에도 있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기민당의 일부 '꼴통 보수파'가 아니었다면 독일 통일은 더 앞당겨졌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 독재·대재벌·미국과 일본의 이익 보안법

국가보안법은 세계 인권헌장은 물론이고 우리의 헌법정신과도 위배되며, 우리의 국가관과 학문 예술관을 왜곡시킨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이 법이 지칭하는 '국가관'은 세계사적으로 공인된 국가가 아니라 채만식이 쓴 '000의 국가관', 즉 친일파 옹호, 분단 고착화, 친미사대주의, 문민이든 군부든 독재권력 체제 유지, 독과점 대기업 이익 옹호, 국민 복지나 노동자 농민 권익과 여성의 평등권 등 각종 인권 사상 반대, 학문과 예술의 현실비판 반대, 민족주체적인 사회체제가 아닌 미국 의존형 세계화 지향 등등의 바탕 위에 형성된 국가체제를 지칭한다.

그래서 이 법의 별명은 '국가보안'이 아니라 '독재·대재벌·미국과 일본의 이익 보안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란 단어도 마찬가지다. 그 기준은 오늘의 유럽 선진국이 끊임없이 추구해 와서 이룩한 인본주의 사상을 실현하는 인간다운 국민복지 사회를 뜻하는 것이지 "반공을 국시"로 하는 반민족적·반통일적인 행태가 자유민주주의는 아니다.
리승만 문민독재와 5·16 군부 독재 체제 아래서 배운 국가관과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여전히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받드는 데서 국가보안법은 온존한다.
세상은 급변하며 역사는 발전하건만 국가보안법은 의구하고 영원해야 하는가.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의 정신연령으로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구가하는 시대에 과연 바람직한 세계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과연 우리 시대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지도자를 뽑는 국민의식이 과연 유럽형 선진국가가 지닌 국민복지 사회를 창출해 낼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에게 유럽처럼 우리도 잘 사는 사회를 꿈꾸며 그런 차원의 복지를 누릴 권리가 있을까?
국가보안법은 단순한 통일의 걸림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며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정신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장애물이자 전 국민을 '정박아'(精薄兒)로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덧붙이는 글 | 임헌영 선생은 작가회의 소속 문학평론가이며 민족문제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2007.10.08 16:1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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