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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스무엿새 단식을 마치고 짐을 싸던 ‘너’에게 2005/01/09
스무엿새 단식을 마치고 짐을 싸던 ‘너’에게


스무엿새 동안 물만 넘겼던 너는 마지막 날 미음 한 컵을 겨우 넘겼다. 2004년 마지막 날 결국 국가보안법은 보수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국회 의사당 의장석을 넘지 못했다. 네가 스무엿새 그토록 목이 터져라 “연내 폐지”를 외쳤지만….
네가 밥을 굶고 있을 때, 네가 그 차가운 여의도 아스팔트 위에 초췌한 모습을 앉았을 때, 나날이 추위는 굶주린 네 배와 뼈와 살을 후벼 팠고, 너는 기력을 잃어 갔다. 어쩌다 만나는 너는 그러면서도 눈빛만은 빛났다. 네 목소리만은 기죽지 않았다. 여의도에서 영등포까지 걸어가 열린우리당사 앞 항의시위를 하고 힘겨운 발걸음으로 돌아올 때 차가운 한겨울 바람이 너의 뺨을 때렸다. 새벽바람이 서울을 강타했던 12월 마지막 그 날에도 너는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 찾아가 요구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도 너는 촛불을 밝혔다.


12월 30일, 단식농성 25일째, 수구본당 한나라당과 한밤중에 야합한 열린우리당의 지도부와 중진의원들이 있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아닌 개정론을 대체입법안이라고 들고 와 집권여당의 당론마저 변경하려는 술책을 부렸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만나면서 당론 후퇴 불가를 외치면서 화가 일었다.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더욱 가열차게 요구해도 모자라는 판에 대체입법이라니, 그날 열린우리당의 의총은 당론 변경 의제를 부결시켰다.
그때 너는 국회 앞 진격투쟁의 현장에 있었다. 너의 생명을 유지하던 물과 소금마저 끊어버린 끝장 단식 농성으로 동지들이 한남동 새벽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었다. 그날 배신을 꿈꾸는 국회를 향해 단식농성단은 국회진격 투쟁을 전개했다. 국회 앞 도로는 너를 비롯한 단식자들이 점거했지만, 경찰은 폭력으로 응수했다. 물마저 포기한 너의 육신으로 흐느적흐느적 국회 앞 도로까지 혼신의 힘으로, 마지막 힘까지 쏟으며 달려갔지만 단식대오를 막아선 것은 경찰들이었다. ‘10**’ 하는 전의경 기동대였다. 겨우 몸을 지탱하고 악으로 구호를 외치는 너희에게 경찰은 폭력을 휘둘렀다. 너의 주변에서 동지들이 피 흘리며 쓰러지고, 길바닥에 쓰러진 너와 동지들을 짓이겼다. 방패로, 군화발로, 그들은 경찰 버스에 연행해 가고, 너는 그날 피 흘리며 쓰러진 어느 여성을 경찰로부터 보호하며 눈물범벅이 되어 울부짖었다. 취재기자들마저도 울면서 사진을 찍었다는 그 현장에서 너의 쇠잔해진 몸으로 그렇게 경찰의 폭력을 가로막다 사지가 들려 영등포경찰서로 넘겨졌다.

국회 안에서 난 ‘오마이뉴스’를 통해 그 사진들을 보았다. 너의 모습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목이 메었다. 그 현장 사진들을 당장 국회의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개**들아, 밖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간다.” 난 외치지 못했다. 열린우리당의 강경파 의원들이 의총에서 대체입법안을 부결시켰다며 희희낙락하는 철부지 의원들에게 겨우 밖의 상황을 약간 설명하고 그 자리를 떴을 뿐이다. 자세히 설명도 못했다. 그냥 그 상황을 설명하려면 주체할 수 없는 설움과 분노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 밤에 국회의장은 직권상정을 하지 않았다. 물과 소금마저 버리고, 직권상정을 요구하는데 한밤중에 여야 교섭단체의 원내대표들을 다시 불러내 협상을 시켰다. 국가보안법은 2005년 2월에 다루자는 것, 3+1이 아닌 2+2로 협상이 된 것이지만, 그 합의마저도 거부했다. 다시 기사회생, 이제 명분만 찼던 국회의장이 국가보안법을 직권상정할 수 있는 호기가 찾아왔다는 판단이 섰지만, 국회의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경호권을 발동할 수 있는 명분이 아니라고 버티었고, 다음날 개혁입법들은 모두 직권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다음 해로 넘겨졌다. 국회의원들은 수구꼴통 박근혜 당이 제안한 대로 ‘1+3’을 수용한 대로 마지막 항의도 못한 채 새해를 넘기고 여야가 덕담을 나누며 인사했다.
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마지막 날까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했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었는데, 차마 네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네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결연한 투쟁을 전개할 때 나는 상황실을 지켰다. 낮이 없고, 밤이 없던 상황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정치권이 기류를 감지하고, 매일처럼 잡혀 있던 기자회견과 결의대회와 촛불집회에 쓸 성명서와 기자회견문을 쓰면서 난 너와 너의 동지들의 투쟁을 문장 속에 담아내려 애썼다. 매일 드나들던 국회는 우리를 배신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목소리는 방음장치로 철저하게 가려진 국회의사당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그들은 우리의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외면했다, 배신했다.
밤 12시까지 이어진 해단식에서 우리는 어깨를 걸고 노래했다. 동지가, 함께 가자 이 길을, 그래도 너와 동지들은 웃었다. 다음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너는 투쟁의 불씨를 안고 간다고 했다. 용기를 얻어 내려간다고 했다. 다시 부르면 언제고 달려와 투쟁하겠다고 했다.
미음 한 컵 들고 농성텐트로 가는 단식농성단 대오 속에 너도 있었다. 말없이 끌어안았다. 부둥켜안으며 고생했다는 말밖에 못했다. 정녕 하고 싶었던 말은 꺼내지도 못한 채 너를 보냈다. 미안하다. 네게 너와 함께 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이럴 바엔 차라리 너와 함께 굶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너와 함께 여의도 칼바람을 맞았어야 하는데, 너와 함께 국회 앞 도로로 진격했어야 하는데, 그게 내 몫일 텐데, 정말 나누고 싶었던 선물은 국가보안법의 폐지였는데….


수무엿새, 아닌 송현석이 굶었던 60일째 난 여의도에 있었다. 삭발농성, 3백인, 560인, 1,000인 단식농성을 보았다. 그 속에 너도 달려왔고, 그 속에서 너는 자랑스러운 동지였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강추위도 끝내 우리를 꺾지 못했다. 이 겨울 우리는 야합을 보았고, 배신을 보았다. 수구의 정체를 보았고, 그들에 부역하는 반동의 무리를 보았다.
이제 다시 투쟁을 준비하자. 네 여윈 몸을 다시 살찌우고, 기력도 회복해야지. 우리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집단단식농성투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최우선 개혁과제로 떠올렸다.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 수구는 분열되고, 그들은 국가보안법과 함께 소수 세력으로 몰락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함께 수구들이 끝까지 지키려던 체제가 붕괴되고 있다. 우리의 투쟁은 패배했지만, 그래서 승리했다.


단식보다 더 힘든 게 복식이라 했는데, 이제 다들 집에 돌아갔겠구나. 인천, 광주, 대구, 울산, 부산까지 모두 돌아갔겠구나. 아이들에게 젖을 물리고,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오래 묵혔던 그리움으로 밤샘 얘기꽃을 피웠겠지.
네 여윈 몸을 잘 추스려야지, 야윈 몸에 살이 오르고, 기력이 빠진 근육마다에 다시 힘을 붙여와야지. 밀린 일들 잠시 접어두고 고단한 몸 좀 쉬거라. 준비 없이 맞은 새해 계획도 세울 겸, 푹 쉬어라. 다시 만나자. 그때는 정말 끝장내는 싸움, 승리하는 싸움을 하자, 이 겨울에 씨앗을 뿌리고 돌아가는 나의 너여, 사랑하는 동지여.


- 단식농성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공동운영위원장 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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