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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펌]골든벨 "국보법이 남느냐, 내가 남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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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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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이 남느냐, 내가 남느냐”
[경향신문 2004-10-26 15:09]
“6,70년대 우리 농민들이 많이 마시던 술로, 이 술을 마시고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국가보안법에 걸려 끌려간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흔히 국가보안법을 이야기할 때 아무나 막 걸린다고 해서 000 보안법이라고도 하는데요. 이 술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굳이 국가보안법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눈치껏 맞출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아무나 막 걸리는’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알리 없는 청소년들에겐 이 문제도 녹록치 않다. 그러다보니 스케치북에 자랑스럽게 쓴 정답은 ‘동동주 보안법’. 강당 안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6,70년대 인사는 ‘멸공’-
지난 24일 서울 한성여중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도전! 골든벨’ 퀴즈대회는 청소년들에게 국가보안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 진행방식은 기존의 TV 프로그램과 동일하지만 국가보안법에 관련된 21개의 문제가 출제된다. 교과서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TV 프로그램과 달리, 이날 열린 ‘도전! 골든벨’은 학교에서는 접해볼 기회조차 없었을 내용이니 문제의 체감난이도는 만만치 않았을 터.
문제의 난이도를 떠나 100여명의 참가 청소년들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반공웅변대회, 반공글짓기대회 등 반공교육이 한창이던 6,70년대 교사와 학생들이 나누던 인사말을 묻자 참가자들은 한참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안녕하세요’ 말고 또 다른 인사말이 있었느냐, 는 의아한 표정. 고민 끝에 들어올린 정답판에는 ‘안녕’ ‘하이’ ‘즐~’ ‘충성’ 등 요즘 청소년들이 쉽게 쓰는 인사말이 적혀있었다. 정답은 ‘멸공(반공)’ . 청소년들은 정답을 못 맞춰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다만 ‘정말일까’ 하며 놀랍고 신기해할 뿐.
이미 우리 귀에도 익숙한 북한노래 ‘반갑습니다’ ‘휘파람’을 부르는 것도 국가보안법 위반행위이며,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친구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국가보안법 제10조 불고지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청소년들은 한참을 웃었다. 낄낄거리며 친구들끼리 ‘서로 신고하겠다’며 너스레를 떨다가도 ‘설마···’ 하며 못 믿는 눈치였다.
그러나 예상보다 많은 학생들이 국가보안법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번 퀴즈대회를 위해 동영상과 자료집을 보고 준비한 이들도 여럿이었으며,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즐겁고 진지한 자세로 퀴즈대회에 임했다. 웬만한 어른들도 알지 못하는 국가보안법을 법조문까지 줄줄이 꿰고 있는 몇몇 청소년들도 눈에 띄었다.
-국보법, 이상한 법-
퀴즈대회 중간 ‘국보법’으로 삼행시 짓기 대회가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국가냐, 보라~ 이것이 법이냐, 법 같지 않은 법을 가지고 무얼 할 셈이냐’ ‘국가 망치는 이상한 법, 보잘 것 없는데 왜 이렇게 신경 쓰지? 법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인데, 이러면 안 되지’등 발칙하면서도 정곡을 꼬집는 삼행시들이 참석자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마지막 21번 문제까지 남은 인원은 총 9명. 문제는 유엔인권이사회 관계자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국가보안법을 영어로 어떻게 표기하는지를 묻는 것. 답은 ‘NSL(National Security law)’. 이어 국가보안법에서 북한을 ‘정부를 자처’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참칭’ 이라는 용어에 대해 묻자 많은 청소년들이 탈락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신정보람(광남고 3), 이혜정(탈학교 청소년) 양이 골든벨을 울리는 영예를 안았다.
-살아있는 교육현장-
도전 골든벨, 폐지! 국가보안법 추진위원장을 맡은 홍세화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은 “진보당이나 인혁당 사건 등은 현재 교육과정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현대사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잘 맞춰줘서 대견하다”면서도 “그러나 이런 청소년들의 모습이 보편적인 모습이 아닌 특별한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고 말했다.
이날 도우미로 참석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은 한결같이 ‘도전 골든벨! 폐지! 국가보안법’ 퀴즈대회를 원로교사들의 반공교육 참회선언에 비유했다. 과거처럼 반공 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하는 현재의 교육도 그 때와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단 한 시간만 교육 받아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을 것”이라며 문제를 맞추는 청소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성원식(전교조 편집실) 씨.
21번 문제에서 아쉽게 탈락했으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국가보안법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다”면서 “재미있고 뜻 깊은 경험이었다”며 활짝 웃는 이윤희(영동일고 2) 양.
행사 막바지에 내뱉은 이들의 한마디는 ‘도전 골든벨! 폐지! 국가보안법’ 행사가 단순히 퀴즈대회라는 이벤트적인 의미를 넘어 살아있는 교육의 현장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행사 시작 전 참가 청소년 전원이 힘차게 외쳤던 구호 ‘국가보안법이 남느냐, 내가 남느냐’. 이날 승리는 결국 청소년들에게 넘어갔다.
그래서일까. 이번 행사를 기획한 유동걸(전교조 통일위원회 사무국장·영동일고 국어 교사) 준비위원장의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이 자유와 평화, 인권이 보장된 행복한 세상의 주인으로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는 말이 마냥 헛되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미디어칸 이성희기자 mong2@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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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단 농성일지
